은행권, 판박이 상품 밀어내기식 영업 '뒤탈'
2025-06-03 06:00:00 2025-06-03 0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이재희 기자] 금융당국의 경고에도 은행권에서는 도를 넘은 영업 압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기간 성과를 내기 위해 친척·지인을 통한 영업을 종용하고 개인별 실적으로 줄세우기를 하다가 내부 반발로 홍역을 치르기도 합니다. 당국이 불완전판매 방지를 위해 밀어내기식 영업을 중단하라고 경고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해 보입니다. 
 
출시 상품마다 판박이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모임통장이나 트래블카드, 슈퍼 앱, 알뜰폰 등 상품 구조가 거의 유사한 '판박이 상품'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한 은행이 출시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 다른 은행이 비슷한 구조로 만들어 내놓는 식인데요. 다른 은행의 유사 고객을 뺏고 뺏기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각종 모임에 필요한 돈을 여러 명이 하나의 통장으로 관리하는 '모임통장'이 대표적입니다. 카카오뱅크(323410)가 2018년 금융권 최초로 모임통장을 출시, 이용자 수 유입 효과를 톡톡히 누렸습니다. 지난 2023년 토스뱅크가 카카오뱅크의 모임통장과 유사한 기능의 상품을 내놨습니다. 과거 모임통장을 출시했다가 접은 바 있는 시중은행들도 올 들어 모임통장 경쟁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통합 애플리케이션(슈퍼앱)같은 디지털 전략도 마찬가지입니다. 2023년 신한금융지주(신한지주(055550)) 통합 앱 '슈퍼쏠(SOL)' 출시 이후 기존 통합 앱이 없던 금융지주도 통합 앱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지난해 말 우리금융지주(316140)가 슈퍼앱 '뉴원'을 내놨고, 농협금융도 기존 뱅킹앱 'NH올원뱅크'를 슈퍼앱으로 고도화할 계획입니다.
 
해외여행 특화카드인 트래블카드는 하나은행이 트래블로그 체크카드를 발급한 뒤 은행권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이 카드는 은행의 외화통장과 연결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만큼 고객 유치 효과가 큰 상품입니다. 국민은행은 'KB국민 트래블러스 체크카드', 신한은행은 '신한 SOL트래블 체크카드', 우리은행은 '위비트래블 체크카드', 농협은행은 'NH트래블리 체크카드' 등을 줄줄이 출시했습니다.
 
알뜰폰과 같은 은행권의 비금융 사업 확장도 마찬가지입니다. KB국민은행은 혁신금융서비스 승인을 통해 알뜰폰 사업 '리브모바일'을 선보이며 통신 사업에 진출했고, 지난해 금융위로부터 정식 부수업무로 지정받았습니다. 그러자 우리은행도 올 들어 '우리WON모바일'을 출시하며 알뜰폰 사업에 가세했습니다.
 
은행들이 상품 구조가 유사한 '판박이 상품'을 출시하며 과도한 가입자 뺏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은행 대출업무 창구. (사진=뉴시스)
 
과도한 '가입자 뺏기' 경쟁 
 
트래블카드의 경우 은행 고객 확보 차원에서도 중요해지면서 직원에 대한 영업 압박이 상당합니다. 기존 은행의 시장 점유율을 뺏어와야 하는데 창구 업무가 끝난 뒤에도 영업을 해야 할 정도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직원 개개인을 대상으로 가입 성과를 줄세우지 않더라도 '최소한 무실적 직원은 없도록 하라'는 본부 지침이 내려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고객 유치가 목표지만 각 은행이 내놓은 상품 특색이 사라지면서 레드오션이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 과정에서 친척 등을 활용한 지인 마케팅과 직원 개인들의 실적 줄세우기 등의 행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단기간에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강제적인 밀어내기식 영업 압박이 자행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신한은행 노조에서는 모임통장의 직원별 목표 할당과 실적 줄세우기를 금지하고, 상품 자체 경쟁력에 기반한 영업 분위기를 조성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신한은행 영업본부에서는 각 지역본부 및 부서에 관련 내용의 지침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은행 검사·감독 업무계획을 통해 은행권 성과체계 등 영업행위 전단계를 집중 점검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불완전판매 등 금융사고의 근본 원인이 밀어내기식 영업행태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사고 건수는 128건으로 전년(61건)보다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사고금액으로는 730억원에서 1903억원으로 261% 증가했습니다.
 
금융당국이 성과보상체계의 적정성, 핵심성과지표(KPI) 설계 여부 등을 들여다보겠다고 밝혔지만 손실변동 폭이 큰 고위험 상품에 집중돼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위험상품에 비해 원금손실 위험이 없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경우 친척이나 지인 등의 신분증 사본을 받아 가입시키는 편법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KPI에 단기 성과를 넣지 않으면서 비공식적 부서 지침으로 영업 압박을 지속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금융감독원은 불완전판매 온상으로 지목되는 밀어내기식 영업 행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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