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재도전이 가능한 유연한 사회
2025-06-10 06:00:00 2025-06-10 06:00:00
대선은 끝났다. 새 정부가 가동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듣기 좋은 소리로 가득찬 공약이 이행될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유권자는 없다. 그러나 작년 123일부터 시작된 계엄 소동이 63일의 대선으로 간신히 일단락되었으니 정치가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이 가지고 있다.
 
평행선을 달라며 대치하던 대선 후보의 공약 가운데 신기하게도 국립대 개혁안은 내용이 실질적으로 비슷했다. 이재명의 서울대 열 개 만들기”, 김문수의 국립대 통합”, 권영국의 서울대 학부 폐지는 모두 서울대가 정점에 있는 대학 브랜드의 서열을 타파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여기에는 만인이 선망하는 서울대 졸업장이 없어지면 만악의 근원인 살인적 입시 경쟁이 완화되고 고교생과 학부모들도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디. 명문 사립대를 향한 새로운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어쨌든 성역인 서울대의 권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모든 국립대의 브랜드가 평준화되면 청소년들은 행복해질 것인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국공립, 사립을 막론하고 대학의 배출하는 전공별 인재의 규모는 사회의 직종별 노동력 수요와 엄청나게 괴리되어 있다., 대학 브랜드의 평준화를 실현해도 직종별 노동력 수급 불일치라는 고질적 문제를 방치하면 구인난과 구직난이 병존하는 사회적 낭비가 해소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초중고생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교대와 사대를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을 빨리 강구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려면 정치권이 엄청난 저항을 무릅쓰고 대학 내부를 대수술하는 악역을 감당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정규직을 기준으로 삼는 현행 고용 제도 하에서는 전직을 하거나 적성에 맞는 새로운 직업을 가지는 것이 어렵다. 근속 기간에 따라 보수가 결정되는 호봉제가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므로 전직울 하려면 개인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기업도 부담이 큰 정규직 채용을 꺼리니 비정규직이 구조적으로 늘어난다. AI와 같은 신기술이 등장하면 멀쩡한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다. 더구나 저출생의 여파로 경제활동 인구도 줄어든다. 결국 능력과 성과를 반영한 직무급의 보급을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산업구조 변화와 기술혁신으로 퇴출되는 노동력을 재훈련시켜 노동시장에 투입하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직업훈련과 고용안정 업무를 챙겨야 한다. 물론 재훈련 기간 동안의 생활을 보장하는 복지서비스가 제공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노동력을 유연하게 관리하면서도 노동자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정책을 추진하려면 노동자의 신뢰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 정당성을 가진 민주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대학개혁은 노동시장 개혁과 결합되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유연한 사회를 만들어야 무작정 명문대를 가야 한다는 집착도 없어진다. 그러나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에게 직업교육과 직업안정 서비스를 충실하게 제공하는 정책이 있어야 진정한 사회통합이 실현될 수 있다. 새 정부는 교육, 노동, 복지를 연계해 통합적으로 생각하는 정책마인드를 갖추어야 한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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