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나쁜 기업이 좋은 나라, 노동하기 나쁜 나라
2025-06-13 06:00:00 2025-06-13 06:00:00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흘러간 신자유주의 모토지만, 구조적 불황에 직면해서 다시 조명받기 시작하고 있다. 헤게모니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기업의 해악만을 지적하는 건 대중의 공감을 받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하청, 자회사 고용을 포함해 비정규직을 많이 쓰고, 고용을 외부화해서 열악한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을 양산하는 기업이 어떤 제재도, 비판도 받지 않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산재 사망사고를 반복적으로 일으키거나 대형 산재 사망사고를 낸 기업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져도 문제이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불안정 일자리를 양산하고 산재 유발 기업이 버젓이 존립하면, 적정 고용조건과 산재 예방을 위해 설비, 인력에 투자한 기업들이 비용 경쟁에서 불리하게 된다. 나쁜 기업은 그 자체로도 나쁘지만, 산업 생태계를 ‘바닥을 향한 경주’로 치닫게 하여 착한 기업을 도태시키기에 더 나쁘다.

나쁜 기업이 경영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서는 안된다. 신상필벌, 일벌백계, 인과응보와 타산지석은 산업정책, 기업정책, 노동정책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배치되는 게 아니다. 착한 기업이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기업이 청년고용 창출했을 때 지원금을 더 높여 준다고 하자. 최근 몇 년동안 매출액 증가 등 인력 수요 증가에도 신규고용 창출에 소극적으로 임했던 기업이 지원금을 많이 받는다면 문제이다. 체계적인 고용 공시제, 임금 공시제를 바탕으로 해서 평가하고 공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원금 정책이 가진 문제점인 사중손실(지원금 없어도 고용할 기업이 지원금 받고 고용하는 문제)과 대체효과(지원금 대상이 되는 사람을 비대상 대신 고용)에다가 착한 기업의 경쟁력을 손실시키는 구축효과까지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지원금이란 유인(pull) 장치는 하지 않으면 제재받는 견인(push) 장치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견인 장치로 목표치 미달 시 지원금의 세배에 이르는 벌과금을 부과하게 되지만, 부담된다면 공시제를 통한 기업 책임성 공표 효과를 장착하자는 것이다.

비정규직 정책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호들갑을 떨던 2000년대 중반에 직접고용 비정규직 중심 대책은 고용시장이 간접고용(파견, 하청, 용역과 특수고용) 확대로 넘어간 시점에서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었다. 풍선효과니 떠들게 아니라, 간접고용 중심 정책으로 옮겨가야 했다.  
 
원하청 상생정책의 일환으로 등장한 하청 회사 노동자의 직업훈련 지원확대 정책은 하청 노동자의 숙련개발이나 하청 기업의 기술 기반 축적에 도움을 주기보다, 당장에 원청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훈련수요의 비용을 충당해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다른 예로 인턴공화국이라 불리며 온갖 청년 고용정책을 갖은 인턴정책으로 도배질한 이명박 정부(그리고 윤석렬 정부)에서 1년 이내에 교체되는 인턴의 총 인원 수만 많아 보이게 할 뿐이라는 비판(매년 1만명 씩 5년이면 총인원 5만이지만, 남은 일자리는 1만명 뿐)에 정규직 전환형 인턴 정책이 등장했다. 그랬더니 정규직으로 밀어 넣어 탈이 났던 유력자들이 자녀를 인턴으로 채용하게 하고 정규직 전환자 대상으로 선정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좋은 직장으로 각광받던 은행에서는 은행끼리 품앗이로 이런 일을 벌여 취업 로비 의혹을 비껴가기도 했다.
 
평균 10년 현업에서 근무했던 인천공항의 하청노동자들이 공시족이 가는 본사의 업무와 다른 현장 업무를 계속하면서 임금 격차가 있는 정규직으로, 결국 자회사 반(半)정규직으로 전환한 데 공정의 잣대를 들이댈 게 아니라, 청년들은 이런 일에 분개해야 했다.

지속가능경영(ESG) 보고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두 기업이 있다. 그런데 한 회사는 세계적 반도체 기업으로 직업병인 백혈병으로 많은 노동자가 숨진 걸 숨겨왔는데, 보고서의 근거가 되는 MSCI와 GRI 평가 기준에 버젓이 있는 직업병 항목을 누락했다.
 
고용노동부와 사회단체 반올림과 지속적인 논의구조를 갖고 대처하고 있다는데, 왜 또 숨긴걸까? 세계 공항 서비스 1등을 여러 번 차지했다는데, 속을 들여나보니 공항의 현업 업무는 죄다 하청업체에 맡긴 공사가 있다. 87.4%에 이르는 외주 비정규직 비율로 비정규직 남용 분야에서 압도적 1등이었다.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정규직화 계획으로 이제는 자회사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이 공사의 지속가능보고서 어디에도 공항 현장업무가 모두 자회사 소속 노동자의 차별구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의 허실이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속살인 고용구조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으면 나쁜 기업이 착한 기업을 집어삼키는, ‘나쁜 기업이 좋은 나라’는 계속된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서는 달라질 수 있을까?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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