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새 한 쌍이 계곡을 낀 숲속에서 짝짓기를 하고 있다.
6월 말 한반도는 장마권에 들어섭니다. 올해는 예년보다 일주일 앞당겨 장마가 찾아왔어요. 이 기간에는 장마전선이 남북을 오르내리며 아열대 지역의 우기처럼장대비를 쏟아붓지요.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대부분의 새들은 이때 큰 어려움을 겪어요. 먹이 사냥을 나서야 하는데 강한 비에 깃털은 젖기 일쑤고, 설상가상으로 먹이인 곤충도 장마 때는 움직임이 적기 때문에 허탕을 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오히려 장마를 즐기는 새들이 있어요. 물고기와 양서·파충류를 즐겨 먹는 물총새과의 호반새(Ruddy Kingfisher)입니다. 비가 오면 양서류나 지렁이 같은 생물들은 이들에게 더 노출되지요. 파충류도 비에 젖은 피부를 말리려고 바위나 나무에서 쉬다가 호반새에게 당합니다.
호반새는 끝이 뾰족한 굵고 긴 부리를 가졌고, 깃털은 광택이 나며 화려해요. 머리가 몸에 비해 큰 편인데, 꼬리는 짧지요. 물가나 하천을 낀 산림의 나무 구멍이나 절개지, 흙벽에 구멍을 파고 둥지를 틀어요. 몸길이는 27cm 정도이고 생김새는 청호반새와 거의 같아요. 몸 전체가 주황색이고, 허리에 파란 빛의 세로 줄무늬가 있지만 눈에 띄지는 않아요. 나뭇가지나 전깃줄에 앉아 있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급강하해서 부리로 잡아채지요. 5월에 우리나라에 와서 번식한 뒤, 10월에 월동지인 동남아로 가는 여름철새지요.
호반새가 비오는 날 지렁이를 사냥해 부리로 물고 있다.
‘쿄로로로로’ 목젖을 굴리는 맑고 아름다운 호반새 소리가 계곡을 타고 널리 퍼져 울리지만, 컴컴한 숲속에서 이들을 찾기는 힘들어요. 저도 호반새 소리를 따라 이 녀석을 찾으려고 남양주 예봉산 계곡을 5년째 뒤졌지만 번번이 실패했어요. 2000년대 들어서기 전에 강원도 강릉, 춘천, 경기도 남양주에서 겨우 5번 정도 목격했지요. 그것도 녀석이 잠시 전깃줄에 앉았을 때 우연히 본 것인데 둥지는 끝내 찾지 못했어요. 2007년 여름, 춘천에서 나무 구멍으로 들어가는 녀석을 목격하고 흥분과 기대 속에 그 둥지를 3주째 찾아갔지만, 호반새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어요. 짝을 만나 둥지를 틀면 이때부터는 천적에게 노출되지 않으려고 울음소리를 내지 않아요. 그래서 더욱 찾기가 어렵죠.
그런데 2010년 이후 호반새가 전국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어요. 특히 계룡산 계곡 대부분에는 호반새가 서식하고 있어요.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호반새를 계룡산 국립공원의 깃대종으로 선정했어요. 공주시 갑사와 신원사 계곡에서 호반새가 해마다 번식하자, 이 계곡은 조류 사진가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되었지요. 계룡산의 숲이 우거지고 곤충과 파충류, 어류 같은 계곡의 생물 다양성이 풍부해지자 호반새들도 늘어난 것이지요. 3~4마리의 새끼를 기르려면 호반새 부부는 온종일 먹이 사냥에 나서야 합니다. 매미, 개구리, 버들치 등을 주로 사냥하지만 때로는 무자치(물뱀)나 독사도 잡아 와요. 사냥한 뱀을 산 채로 새끼에게 주는데, 두터운 부리로 움켜잡고 나무나 바위에 패대기쳐 뱀이 비실비실해지면 그때 주는 거지요.
지구상의 새들 대부분은 급속히 파괴되어가는 자연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개체수가 줄고 있어요. 그 가운데 물총새과 새들은 더욱 심각합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물총새, 청호반새, 호반새가 이제는 특정 지역을 찾아가도 만나기 힘들어졌어요. 그들이 좋아하는 먹이인 양서·파충류는 최근 100년간 지구에서 가장 급격히 감소한 생물이랍니다. 먹이가 줄어듦에 따라 이들의 숫자도 필연적으로 따라 줄고 있지만, 문제는 인간들이 그 심각성을 아직 모르는 것이지요. 양서·파충류의 감소는 인간의 남획보다는 그들의 서식지인 농경지와 습지 환경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도 물총새과 새들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전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청호반새의 번식지가 북상해 이제는 경기 북부에서 아주 적은 수의 개체만 볼 수 있어요. 반면 호반새는 따뜻한 나라에서 한반도로 더 많이 유입되어 전보다 번식 개체수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보기 드문 여름철새입니다. 장마철 절개지에 둥지를 트고 새끼를 기르던 청호반새가 급격히 줄어들어 아쉽지만, 그래도 호반새가 한반도 곳곳에서 특유의 길고 청아한 노랫소리를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글, 사진=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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