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3 대선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일부 정치 세력은 여전히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헌법재판소의 탄핵과 민주적 절차에 따라 진행된 6·3 대선의 무효를 주장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와 대선에서의 민의(民意)를 보건대 12·3 계엄은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 붕괴를 기도한 집권 세력의 친위 쿠데타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주목할 지점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헌법과 법률에 규정한 절차에 따라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것이다.
집권 세력의 친위 쿠데타를 헌법과 법률에 따라 평화롭게 진압하고 헌정 질서를 회복한 사례가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점에서 이번 12·3 계엄과 탄핵, 그리고 6·3 대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영국의 명예혁명에 비견할 만한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윤석열정부가 초래한 정치적 혼란을 이겨낸 것일 뿐이지 무능과 부작위, 그리고 부자 감세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경제적 상처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갑작스런 불법 계엄으로 인한 내수경기 침체와 대외 신인도 하락은 중산층과 서민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외국인 투자자의 급격한 자본 유출을 초래하여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마저 추락하게 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남겼다. 게다가 최근에는 러-우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까지 발발했을 뿐 아니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충격마저 나날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요컨대 지금은 경기 회복과 경제 성장을 위한 정책 집행이 절실하다. 다행히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운동 당시 경제 회복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언급했고 당선 직후에는 추경을 통한 내수경기 회복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대규모 재정 지출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 회복과 경제 성장을 주장하면서도 아직까지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 않다. 정권 초기라 말하기 어렵겠지만 답은 증세에 있다.
윤석열정부는 지난 3년여간 약 90조에 이르는 대규모의 감세 혜택을 재벌·대기업 등 기득권에 집중했다. 나아가 대한민국 조세제도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기업과 자본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이후 재벌·대기업의 자산 규모와 이익 수준은 크게 증가했지만 전체 세수에서 법인세 세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감소했으며 금융자산과 부동산자산 또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큰 폭으로 증대되었지만 금융소득 및 부동산소득 관련 세수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따라서 이제는 재벌·대기업과 자산가들에 대한 증세와 ‘조세 부담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라 할 것이다.
일부에서 경기 회복과 경제 성장을 위하여는 증세가 아닌 감세가 더 효과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대기업과 자산가와 고소득자들에게 최고 70% 이상 고세율로 과세하던 1960~1970년대 미국은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당시 경기 회복과 경제 성장을 빌미로 큰 폭의 감세를 단행한 이후부터 경제와 국력이 쇠락하기 시작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이명박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제는 감세가 성장의 마중물이라는 환상을 깨야 한다. 언제까지 50년 전 신자유주의와 레이건 행정부의 환상에 빠져 있을 것인가? 감세는 경제적 부와 사회적 계층의 고착화·양극화를 초래하여 성장을 저해하고 '기회 균등 민주주의'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할 뿐이다. 감세의 대상은 결국 재벌·대기업과 자산가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세정책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지금은 우리나라 경제의 회복과 성장을 위해 각 경제 주체에 대한 '조세 부담의 구조조정'을 단행할 시기다.
유호림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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