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저축은행들이 본격적인 건전성 관리에 나서면서 중소기업 대출을 축소하고 있습니다. 중기 업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연체율이 늘어나자 대출 문턱을 높인 것인데요. 저축은행이 중기 대출을 축소하면 비제도권 대출로 이동 위험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매분기 중소기업 대출 '뚝뚝'
21일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주요 5대 저축은행(SBI·OK·한국투자·웰컴·페퍼)이 전체 대출 포트폴리오에서 중기 대출 비중을 낮추고 있습니다.
SBI저축은행 총대출 대비 중기 대출 비중은 지난 1분기 기준 38.68%로 전년 동기(43.39%)보다 4.71% 내려갔습니다. 같은 기간 △OK저축은행은 46.26%에서 42.71% △한국투자저축은행은 60.71%에서 59.67% △웰컴저축은행은 49.13%에서 42.00% △페퍼저축은행은 49.94%에서 42.74% 등으로 각각 떨어졌습니다. 한국투자저축은행은 중기 대출 규모를 늘렸지만, 가계대출과 공공·기타자금 대출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전체 대출에서 중기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습니다.
주요 저축은행뿐만 아니라 중소형 저축은행들도 중기 대출을 줄이는 추세입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79개 저축은행 중기 대출액은 지난 1분기 기준 45조895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해 1분기 53조4585억원 △지난해 2분기 49조2806억원 △지난해 3분기 47조3067억원 △지난해 4분기 46조3091억원 등에 이어 1조2200억원가량 줄었습니다. 절정에 달했던 지난 2022년 65조3972억원에 비하면 20조원 넘게 축소됐습니다.
중기 대출 중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개인사업자 대출 규모도 지난 1분기 14조9457억원으로 전년 동기(18조4806억원) 대비 4조원 가까이 줄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축은행이 중기 대출을 줄이고 있는 이유는 연체율 관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분기 저축은행 전체 연체율은 9%로, 2015년 이후 10년만에 9%를 넘겼습니다. 기업 대출 연체율은 13.65%로 가계대출 연체율(4.72%)보다 훨씬 높아 전체 연체율 상승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에 연말까지 연체율을 5~6% 수준으로 낮출 것을 주문했지만, 연체율 관리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신규 대출이 줄어들면 전체 대출 규모가 감소하면서 연체율이 오히려 상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비중이 큰 기업 대출 부문의 연체율이 회복돼야 하지만 경기 부진 속에 녹록지 않은 상황입니다.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건전성 관리 때문에 중기 대출뿐 아니라 다른 대출도 보수적으로 운용하고 있어 취급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금융당국의 연체율 압박이 가해진 상황이라 보수적인 기조가 오래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전체적인 시장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저축은행도 대출을 늘리기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현재 중기 업황이 좋지 않아 저축은행도 선별할 수밖에 없다"며 "2금융으로 넘어오는 중기들은 더 부실한데, 대출을 내주면 회수하기도 어려울 수 있어 난처하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도 중기 대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저축은행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중기 자금난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일부 기업은 제도권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2분기 대출행태서베이'에 따르면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과 업황 부진 등에 따라 운전자금 및 유동성 확보 수요 등으로 중기 중심으로 기업 대출 수요가 증가할 전망입니다. 중기 대출수요지수는 지난 1분기 +19, 2분기 +11에 이어 3분기 +25를 기록했습니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줄어드는 셈입니다.
한국은행은 1금융권이 대기업에 대한 대출 태도는 점차 완화하는 반면, 중기에 대해서는 더욱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1금융권이 중기 대출에 소극적인 데다 저축은행마저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신용이 낮거나 설립 초기 단계에 있는 회사들은 자금을 조달할 창구가 사라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축은행이 서민과 중기 금융 편의를 도모한다는 목적에 반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저축은행도 금융당국 기조에 따라 건전성 관리에 혈안이 된 만큼 난감한 상황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저축은행이 중기 대출을 지속할 수 있도록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저축은행은 신용등급이 낮고 담보력이 부족한 기업의 마지막 대출 창구 역할을 해왔다"면서 "대출 문턱을 높이면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되고 제도권 밖에 있는 고금리 사금융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김 교수는 "저축은행이 연체율 관리로 대출 문턱을 높이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라며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이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기 대출을 지속할 수 있는 선제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저축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을 지속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시내에 한 저축은행 모습. (사진=뉴시스)
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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