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배송 그림자)①"근로자는 부상, 정수기엔 물때"…물류센터서 벌어지는 일
"장시간 반복 노동 속 노동자 갈아 넣는 방식으로 시스템 유지"
작업장은 컬리, 정수기는 한진?… 얽힌 책임 구조에 묻힌 현장
2025-07-24 17:09:20 2025-07-24 20:45:13
 
[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서울복합물류센터 내 쿠팡 위탁 물류센터와 컬리넥스트마일 송파 TC 현장 곳곳에서는 ‘초고속 배송’이라는 유통업계 화려한 경쟁 이면에 숨겨진 노동자의 고단한 현실과 안전 불감증, 그리고 위생 관리 부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찾은 송파구 장지동 서울복합물류센터 D동 5층은 쿠팡 등의 물류를 담당하는 위탁 로지스틱스 서비스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다수 인력이 비정기 일용직 형태로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 (사진=이지유 기자)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5시간(휴게시간 30분 포함) 일하는 김수진(가명)씨는 “일은 힘들지만 시급은 최저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쿠팡에서는 해당 시간대 근무 시 30분의 휴게시간을 제외한 4.5시간에 대해 급여가 지급되며, 세전 급여는 4만5945원입니다. 여기에서 고용보험 410원이 공제되어 실수령액은 4만5535원입니다. 
 
김 씨는 “출근도 비정기적으로 불러주고 이 상태로 1년 넘게 일하고 있지만 이곳 D동 5층은 올해 여름이 되어서야 일부 구간에 에어컨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올해도 작업장 절반은 무풍지대였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또 다른 노동자 이정훈(가명)씨는 “작업 중간에 앉을 공간도 없고, 앉아 있으면 눈치를 준다. 냉방 미비에 따른 열사병과 탈수 위험은 도사리고 있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롤테이너에 이마 찍혀도…연고만 바르고 끝”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박하영(가명)씨는 물건을 옮기던 중 금속 운반 장비(롤테이너)에 이마가 찍혀 이마에 상처를 입었지만, 병원 진료 없이 연고만 발랐다고 말했습니다. 박씨는 “예전부터 크게 다치지 않는 한 회사에 말해봤자 아무 조치가 없었던 사례를 목격했었고, 산재 처리를 해주는 분위기도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고 전했는데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도중 이마 부상을 입은 박씨 모습. (사진=이지유 기자)
 
박씨에 따르면 현장 관리자들은 방송을 통해 간단한 주의 사항만 전달하고, 실제로는 온라인 영상으로 대체된 안전교육 외엔 현장 대응 매뉴얼이 부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쿠팡 측은 “해당 물류센터의 냉방장치 공사는 7월 20일까지 설치 완료했다”며 “긁힘 상처를 입은 근로자에 대해서는 이후 병원 진료 여부를 안내했으나, 본인이 병원 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이곳 서울복합물류센터는 로봇·AI 등 자동화 장비 도입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때문에 대다수 작업은 무거운 박스와 물건을 직접 옮기고 분류하고, 상하차하는 고강도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다수 노동자는 “자동화 설비가 없으니 물량이 몰리면 몸이 고스란히 다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라고 전했습니다. 배송 혁신이라 불리는 시스템의 실제 동력은 결국 값싼 인력에 의존하는 착취 구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노동환경의 열악함은 단순히 낮은 임금과 긴 노동시간만의 문제가 아닌데요.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열사병, 정신적 스트레스 등 직업병 위험에 노출돼 있으나 산재 신고율은 현저히 낮습니다. 이는 산재 신청 과정의 복잡성, 회사의 눈치 보기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입니다. 
 
조성애 민주노총 노동안전 보건국장은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소모품’ 취급을 받고 있다”며 “기업은 단기·간헐적으로 일하는 인력이라 시설 개선이나 안전 투자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컬리 송파TC, 물때 낀 정수기와 쓰레기 더미…위생 실종
 
다음은 기자가 방문한 서울복합물류센터 A동 3층. 컬리넥스트마일이 오후 시간대 상하차 용도로 사용하는 송파 TC입니다. 이 공간은 서울복합물류가 소유하고 한진이 임차한 뒤, 다시 컬리가 임차해 사용하는 구조입니다. 
 
기자가 찾은 이 공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물때가 낀 정수기와 각종 쓰레기가 담긴 컬리 택배박스. 일부 기사님들은 “저 정수기가 가장 가까워 이용하긴 하지만 정수기 물때며, 주변에 각종 쓰레기가 방치돼 있어 너무 더럽다”며 혀를 찼습니다. 
 
컬리넥스트마일이 오후 시간대 상하차 용도로 사용하는 송파 TC 임대 공간 내 마련 된 정수기. (사진=이지유 기자)
 
이와 관련해 컬리 측은 정수기는 한진 측 설치이며, 컬리 직원 전용 휴게실에도 정수기가 따로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한 “쓰레기 담긴 박스는 누가 가져다 놨는지 알 수 없고, 폭우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환경 정리가 미흡했을 수 있다”며 전국 TC 환경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공간은 오후 시간대 컬리가 직접 사용하는 작업 공간이며, 컬리 박스가 쓰레기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점에서, 관리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서울복합물류 내 위탁운영 구조는 대부분 ‘소유자-임차사-재임차사’ 3단계 체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요. 컬리 송파 TC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이러한 구조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어렵게 만들며, 결국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작업자만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반복되죠. 이 때문에 “일은 여기서 시키는데 정수기나 위생 문제 말하면 ‘우리 관할 아니다’는 말만 돌아와요”라는 노동자들의 하소연이 반복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쿠팡이나 컬리 등 일부 플랫폼 기업들은 장시간 반복 노동 속에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고용 안정은 전혀 담보되지 않고, 노동자는 등급별로 분류돼 언제든지 교체 가능한 존재로 취급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문제는 이를 방치한 사회 전체의 책임이 크다. 기업들은 이 구조 속에서 당당하게 ‘고용을 창출했다’고 자부하기도 하는데, 이는 노동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왜곡된 구조에서 가능한 발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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