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한·미 관세 협상이 막바지에 들어섰습니다. 우리 정부도 시한이 임박함에 따라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미 관계가 급물살을 탈 조짐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직거래에 본격 시동을 걸었기 때문인데요. 북한 측도 대화엔 조건이 필요하다면서도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북·미 대화가 급전개된다면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뉴시스)
"북·미 관계는 나쁘지 않다"…'스몰딜' 가능성도
미국은 관세 발효를 시한을 앞두고 다시 북한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2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소통하는 데 여전히 열려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과 대화할 의지가 있음을 다시 시사한 겁니다. 관세 협상이 거의 마무리된 시기에 북·미 대화를 통한 '직거래'에 시동을 걸겠다고 선언한 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에도 북한 측 외교관들에게 '서한'을 전달해 대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서한 수령을 거부했습니다. 이번엔 달랐습니다. 미국의 대화 요구에 사실상 화답했기 때문인데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이날 오전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미 사이의 접촉은 미국의 희망일 뿐이다'라는 제목의 담화를 공개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는 나쁘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는 "우리 국가수반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북한 측은 '조건부 대화' 제의를 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조미 수뇌들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비핵화 실현 목적과 한 선상에 놓이게 된다면 그것은 대방에 대한 우롱으로밖에 달리 해석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우리 국가의 불가역적인 핵보유국 지위와 능력과 지정학적 환경도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인정은 앞으로의 모든 것을 예측하고 사고해보는 데서 전제로 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강세한 핵 억제력의 존재와 더불어 성립되고 전체 조선 인민의 총의에 의해 최고법으로 고착된 우리 국가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정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철저히 배격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측이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북한이 대화 거부 기조에서 조건부 대화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입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한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 등 '스몰딜'에 타협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라는 단어를 통해 언급했습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지난 4월 "북한이 핵 무장한 세상에 산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임명장 수여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한국과는 개선 의지 낮아…달래기 나선 정부
반면 북측은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강하지 않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직후 △대북 방송 중단 △전단 살포 중지 △개별 관광 허용 등 대북 정책 기조를 수정했습니다.
전날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이재명정부의 대북 확성기 중단 등을 성의 있는 노력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고,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 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고 했습니다. 이어 "조·한 관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역사의 시계 초침은 되돌릴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부부장은 한·미 연합훈련에 관해서도 맹비난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남쪽 국경 너머에서는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연합군사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으로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이 한국과 달리 미국 측에만 대화 조건을 요구한 건데요. 북·미 대화가 재개된다면 이른바 '통미봉남'(미국과는 소통, 남한정부의 참여는 봉쇄) 의지를 명백히 전달하며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미국과 북한이 한국을 패싱하면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정책 공조도 약화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이후 북·미 대화에서도 우리나라는 '주변국'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급히 북한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전날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이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정부는 이날에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회의를 열고 8월 개최될 한·미 연합훈련 축소, 연기 등 조정하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다만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다양한 부처 의견을 듣겠다는 것에서 더 나가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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