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민생쿠폰이 바꾼 '골목경제 지도'
"시장에선 웃지만, 내일은 걱정된다"
현장의 체감과 동시에 드리운 불안감
2025-07-30 17:16:43 2025-07-30 19:06:15
[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시장. 반찬가게에서 국을 사고, 채소가게에서 호박 두 개를 고른 50대 김모씨는 "대형마트에선 쓸 수 없어서 오랜만에 시장에 왔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부가 지급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이하 민생쿠폰)이 골목 상권에 뜻밖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백화점, 대형마트, 프랜차이즈 등 '대형 유통망'이 사용처에서 빠지면서, 시장·편의점·동네 음식점 등 그간 소비 흐름에서 소외됐던 공간이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겁니다. 
 
"마트 대신 시장"…'쿠폰 가능한 곳' 따라 움직이는 소비자
 
이날 방문한 개포시장에서는 오랜만에 활기가 돌고 있었습니다. 반찬가게, 정육점, 제철 과일 코너를 돌며 2만~3만원씩 꾸려가는 손님들이 눈에 띄게 늘었는데요. 일부 점포에는 '소비쿠폰 사용 가능합니다'는 안내문이 손글씨로 붙어 있기도 했습니다. 
 
골목상권에 위치한 한 정육점 내부 모습. (사진=이지유 기자)
 
정육점 주인 A씨는 "예전엔 평일 낮에 손님 한두 명 정도였는데, 요즘은 삼겹살이나 불고깃거리 찾는 사람들이 하루 20~30명은 된다"며 "확실히 쿠폰 효과를 체감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생쿠폰은 소상공인 카드 가맹점, 특히 연 매출 30억원 이하 매장에서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대형마트와 체인 음식점은 빠졌습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이 '쓸 수 있는 곳'을 직접 찾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고, 이는 소비 흐름의 지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소비자도 길 잃고, 가게도 매뉴얼 없다"…혼선도 속출
 
하지만 현장에선 혼선도 적지 않았습니다. 사용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될 것 같은' 곳에 갔다가 허탕을 치는 사례도 이어졌습니다. 
 
다이소에서는 특히 불만이 많았습니다. 프랜차이즈 형태에 따라 매장별로 쿠폰 사용 여부가 갈리는데 이를 안내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이나 표지판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한 직영점 다이소 매장 모습. (사진=이지유 기자)
 
"다이소 된다고 해서 왔는데 안 된다고 해서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어요. 가맹점을 가야 된다고 하던데 나이든 사람들이 그런걸 어떻게 구분한다고".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다이소 매장 앞에서 만난 70대 박모씨는 "매장마다 안 된다고 하고, 직원도 잘 모르더라"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일부 음식점 사장들도 "쿠폰 결제 요청은 많은데, 본인이 가맹점인지 아닌지조차 모른다”는 목소리를 냈는데요. 쿠폰 결제는 카드사 정산 구조를 따라 자동 적용되기 때문에 별도 신청이 필요 없지만 안내가 부족해 가게 측도, 손님도 당황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1만원 이하로 끼니 해결"…실속 소비 바꾼 골목의 경제학
 
이처럼 쿠폰 사용처가 제한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도 함께 달라지고 있습니다. '있으면 좋겠다'는 품목보다는, '지금 당장 필요한 생필품'을 중심으로 선택하는 흐름이 뚜렷합니다. 
 
서울 송파구의 한 김밥 전문점 사장은 "요즘은 점심시간 혼밥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1만원 이하 단가로 끼니 해결하려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편의점 매출 구조에도 변화가 감지됩니다. CU와 GS25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간 채소·샐러드 등 신선식품군 매출이 20~30%가량 증가했습니다. 평소에는 '담배·음료·간식'이 중심이었지만, 쿠폰 사용을 계기로 '생활 소비처'로 다시 포지셔닝되고 있습니다. 
 
정책 하나가 바꾼 소비 지도…하지만 '지속가능성'은?
 
민생쿠폰은 단기 정책이지만 그간 소비에서 배제됐던 공간들이 일시적으로나마 중심 무대로 떠오른 건 분명합니다. 시장, 동네 상점, 편의점, 소형 음식점 등은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엔 물음표가 달립니다. 한 시장 상인은 "쿠폰 없어지면 다시 예전처럼 손님 없을까 걱정된다"고 말했고, 한 소비자는 "좋은 정책인데 사용처 찾기가 너무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 정부가 소비쿠폰이나 각종 지원금 정책을 통해 경기 부양을 시도하고 있는 건 맞다"면서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혜택이긴 하지만, 실제로 사용처 찾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소상공인들도 일시적인 매출 증가는 있지만, 지원이 끝나면 다시 손님이 줄어들까 봐 걱정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런 단기 부양책은 말 그대로 '마중물' 역할은 할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경기 활성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그 말은 결국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는 뜻으로, 기업이 투자를 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그래야 소득이 늘고, 그 소득이 다시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선순환이 일어나기에 민간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향의 정책이 빨리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민생쿠폰은 지금 거대 유통을 우회해 작고 촘촘한 상권으로 돈을 흐르게 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오랜만에 시장을 걷고, 동네 김밥집에서 밥을 먹고, 편의점에서 채소를 고릅니다. 
 
쿠폰이라는 '작은 돈'이 소비의 방향과 공간, 그리고 사람들의 발길까지 바꾸고 있는 지금 이 변화가 일시적 이벤트로 그칠지, 지역경제의 복원력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동안 외면받던 골목이 잠시나마 중심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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