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큰 산 넘겼지만 더 큰 산맥이
2025-08-04 06:00:00 2025-08-04 06:00:00
합의란 무엇일까. 소위 서로 의견이 일치한 의사결정을 사전적 의미로 두고 있지만 상호 수용 가능한 결정을 도출하는 개념에 더 가깝다. 그것이 법이든, 정치든, 사회든 다양한 분야에서 오는 의견 차이를 조율한 공통의 결론이자 행동 방향의 도달로 귀결된다. 
 
하지만 합의에는 힘의 논리에 의한 왜곡성이 존재한다. 현실 합의에서 상호 평등이 반드시 이뤄지지 않는 '합의의 모순'과 같다. 힘의 논리가 작용할 경우 강한 쪽이 정보 통제력이나 의제 설정권을 행사하는 등 유리한 방향으로 합의를 유도한다. 
 
약자의 선택지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식 동의. 힘의 논리에 의한 실질적 합의 내용은 타협이 아니라 희생이 본질일 것이다. 즉, 합의는 민주적 수단으로 지목되지만 그 이면엔 지배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 따라서 합의 과정의 공정성이 관건이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통해 지배 없이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을 통해 도달하는 것을 진정한 합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 실현은 이상적 조건과 거리가 먼 탓에 합의의 원칙 중 핵심으로 '상호주의'를 말한다. 한쪽만 양보하거나 희생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고 양측의 이익과 양보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합의'라고 말할 수 있다. 상호관세도 그런 의미가 내재돼 있다. 
 
이번 관세 협상의 결과를 보면 '최악은 피했다'는 평가다. 그렇다고 고무적이라고 자위할 수도 없다. 실제 과정은 불공정했지만 절차는 지켰다는 형식적 동의로 묵언하고 불언하며 현묵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하나의 역사적 무역 '합의'를 한국과 이뤘다'는 미국 백악관의 게시글을 보고 있으면 동맹국의 한 사람으로서 실소만 나올 뿐이다. 공교롭게도 게시글 계정이 왜 'X 계정'인 건지. 정말 'X'스럽기까지 하다. 
 
도덕성·행정 능력 등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하위권의 평가를 받은 바 있는 트럼프를 상대로 맞붙은 우리 정부의 협상전엔 박수를 보낸다. 그나마 실리의 절충을 타결시킨 노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새 정부 출범 후 짧은 시간에 큰 산을 넘어야 했으니. 
 
특히 양측의 고성까지 오간 것으로 알려진 쌀·소고기와 관련한 레드라인을 지켜내면서 일단 안도의 분위기로 읽힌다.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한미 관세협상에 '쌀과 소고기에 대해서는 추가 개방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닌 듯하다. 앞으로의 고민이 더 크다는 얘기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이 준 교훈은 중국도 미국 시장도 아닌 한국 산업군의 출혈을 막기 위한 무역 다변화 요구다. 
 
G7에서 그룹 오브 텐(G-10)의 재편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G2 국가에 집중된 무역을 새로운 국가들과 새판을 짜야 한다는 당위성이 커진 셈이다. 2021년 이후 뚜렷한 진전이 없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도 그 선상에 올라 있다. 지난달 취임 인사차 기자실을 방문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싱크탱크 시절 CPTPP 가입 추진의 필요성애 대해 말한 취지를 전하면서도 한일 간 전략적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CPTPP 가입은 '윈윈'이 될 수 있는 이점은 분명하나 한미 관세의 큰 산을 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경제적 활로를 찾기 위해 일본, 뉴질랜드, 캐나다 등 농업 강국들과 개방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등 산이 아닌 산맥이 도사고 있기 때문이다. 
 
K-농업의 설자리가 위기일지, 농업 구조 개편과 산업적 재설계의 기회가 될지 농정 난제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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