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한여름밤의 출발, 솔부엉이 이야기
2025-08-27 09:57:04 2025-08-27 17:13:12
둥지 입구에 모여 앉은 솔부엉이 어린 새들.
 
‘후-후-’ 어둠이 나즈막이 내려앉자 별빛마저 숨죽이게 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매미 소리로 가득하던 나무 숲도 순간 고요해졌습니다. 낮고 맑게, 숲이 깊게 호흡하는 것처럼 또렷하게 울려 퍼지는 이 소리는 솔부엉이가 짝을 부르거나 영역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예로부터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진 부엉이는 어둠 속에서도 밝은 눈으로 세상을 살핍니다. 마을과 숲의 경계에서 솔부엉이는 밤을 지키듯 앉아 있습니다. 솔부엉이(Northern Boobook, Ninox scutulata)는 4~5월 한국에 찾아와, 10월 초 월동지로 돌아가는 여름철새입니다. 
 
깊은 숲속보다 마을 어귀의 오래된 나무 구멍이나 사용을 마친 까치집을 둥지로 삼는 일이 잦습니다. 한강변의 마을에서도 오래된 느티나무에 둥지를 튼 솔부엉이를 만났습니다. 깊은 밤이면 솔부엉이는 가로등 주변에서 사냥을 합니다. 불빛에 이끌려 모여든 나방, 나무에 붙어 쉬는 매미가 주요 먹잇감입니다. 
 
어미 새는 빛무리 사이에서 낚아챈 나방을 부리에 물고 둥지로 돌아왔습니다. 나무 구멍 속 어린 새들은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어미가 물어 온 먹이를 받아먹습니다. 어미가 사라진 어둠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는 어린 새들의 눈빛에는 낯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함께 내비쳤습니다. 
 
부화한 지 한 달 남짓, 어린 새들은 제법 솔부엉이다운 모습을 갖췄습니다. 발톱은 단단해져 둥지 입구에 매달릴 만큼 힘이 붙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핍니다. 부엉이는 안구 움직임이 제한적이어서 시야를 확보하려면 목을 돌려야 하는데 어린 새들 역시 좌우로, 위아래로, 때로는 270도 가까이 고개를 돌리며 갸우뚱거립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세우고, 삶의 중심을 세우는 시간일까요? 어미는 먹이를 차츰 줄이며 어린 새들이 스스로 둥지 밖으로 나오도록 기다립니다. 
 
보름달 둥지 밖을 구경하는 솔부엉이 어린 새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어린 새들은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며 바깥 세상을 엿봅니다. 둥지 입구로 나서는 모습이 어딘가 비장합니다. 마침내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둥지를 박차고 나섰습니다. 비록 짧은 비상이었지만 긴 기다림이 응축된 순간입니다. 서툰 날갯짓 끝에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했으나 두려움을 넘어선 그 한 번의 시도는 어른 솔부엉이로 가는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뒤이어 다른 어린 새도 둥지를 벗어났습니다. 가까운 가지에 앉아 지켜보던 어미 새는 둥지 밖으로 나온 어린 새들에게 먹이를 건네며 새로운 출발을 북돋았습니다. 솔부엉이 어린 새들은 둥지에서 씩씩하게 나왔지만 아직 많은 것들이 서툽니다. 어미 새를 따라 먹이 잡는 법을 배우고, 날갯짓을 더 가다듬어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힘을 기릅니다. 어린 솔부엉이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솔부엉이를 따라 ‘후-후-’ 숨을 불어보며 이제 막 숲을 향해 나선 이들의 출발을 응원해봅니다.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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