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뜨거운 아이스커피' 은행 예대차 지적 반복
2025-09-02 14:04:31 2025-09-02 14:56:36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이 과도한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금리 차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서자 은행권이 또다시 혼란에 빠졌습니다. 발언 자체만 놓고 보면 대출 중심의 이자 영업에서 벗어나라는 얘기지만, 업계에서는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에 비유하며 앞뒤가 맞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당국이 가계대출 총량제 시행으로 대출 문턱을 높게 유지하도록 유도하면서 예대금리차 확대를 지적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견해입니다. 
 
현 정부 출범 후에도 예대차 확대
 
(그래픽=뉴스토마토)
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취급된 가계대출의 예대금리차는 지난 7월 기준 1.47%p입니다. KB국민은행의 예대금리차가 1.54%p로 가장 컸으며 신한(1.50%p), NH농협(1.47%p), 하나(1.42%p), 우리(1.41%p)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예대금리차는 대출금리와 예금금리 간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은행권의 주된 수익원으로 꼽힙니다. 예대금리차가 클수록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이 늘어납니다. 5대 은행의 예대금리차는 대체로 지난해 8월 이후 올해 3월까지 줄곧 커지다가 이후 소폭 축소됐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 기점으로 다시 확대되고 있는데요. 
 
올 상반기 서울 집값과 가계부채가 치솟자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전방위 억제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대출금리 인하에 제동이 걸리거나 상품에 따라 오히려 더 오르면서 예대금리차는 6월과 7월 두 달 연속 확대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이 예대금리차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온 것입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전날 '예금보호한도 1억원 상향' 기념 행사에서 "기준금리가 인하되는 상황에서 지금 같은 예대금리차가 지속되면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상 예대금리차를 줄일 것을 압박했습니다. 이를 위해 가산금리 체계를 점검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가산금리 인상과 대출금리의 역행, 예대금리차 확대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이 아닙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 초 첫 비상경제점검 TF(태스크포스) 1차 회의에서 은행의 높은 예대금리차를 겨냥하며 높은 대출금리를 문제 삼은 바 있습니다. 대선 과정에서 가산금리 등 대출금리 산정 체계 개편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금융소비자 이자 경감에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정부와 금융당국의 지적과 달리 현 정부 출범 이후 예대금리차는 지속해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금금리는 가파르게 떨어지는 반면 대출금리가 요지부동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차주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예대금리차 줄이기에서 집값 잡기로 옮겨 간 영향입니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영업점에서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예금보호한도 1억원 시행 관련 현장을 방문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기준금리가 인하되는 상황에서 지금 같은 예대금리차가 지속되면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뉴시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
 
은행들은 가계대출 규제 강화 기조에 맞추다 보니 대출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금융위는 6·27 부동산 대책을 통해 올 하반기 가계대출 증가 폭을 당초 목표보다 절반가량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각 은행에 기존보다 대폭 낮춘 총량 목표치를 제시했고, 은행들도 금리 인상, 대출 한도 축소, 모집인 영업 중단 등의 방식으로 대출을 조이고 있습니다.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이후 시장금리가 낮아졌음에도 대출금리는 요지부동입니다.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의 준거금리가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뚜렷한 하락세입니다.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지난 7월 2.51%로 3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반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줄곧 4%대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대금리차를 줄이라는 당국의 주문은 이해하지만, 한쪽에서는 대출 총량을 조이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대출금리를 낮추라고 하니 말의 앞뒤가 맞지 않다"며 "마치 뜨거운 아이스커피를 만들라는 식의 모순된 요구로 갈피를 못 잡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도 "당국 관계자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알면서 예대금리차를 지적한다고 본다"며 "민생 정책 드라이브 차원에서 은행들에 화살을 돌리는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자장사로 벌어들인 만큼 상생금융 차원의 다른 노력을 보이라는 것 아니겠냐"고 했습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7월 기준 2.51%로, 지난 2022년 6월(2.38%) 이후 3년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래픽=연합뉴스)
 
물론 가계대출 관리 정책에 부응해 대출금리를 올리면서 예금금리를 내리는 은행권 행태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예금금리가 낮아지면 은행 입장에서는 보다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대출 수요를 억제하고 있어 예대금리차가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대부분 은행들이 미리 수신금리 등을 내려 비용 부담을 낮추려고 할 것"이라며 "시장금리 연동하더라도 예금금리는 더 내려갈 수 있지만 대출금리는 인위적 인하가 어려운 만큼 예대차를 체감도 높게 축소될지 불투명하다"고 했습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위적 지시가 아니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은행 입장에선 금융당국에 의해 대출 공급은 제한돼 있고 소비자들의 대출 수요는 여전히 높으니, 대출금리를 적극적으로 낮추려 들 이유가 없다"며 "시장과 정책이 정합성을 갖도록 과도하게 인위적 개입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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