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금융당국이 금융사에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모범관행'을 제시하면서 소비자 중심의 경영을 제도화하겠다는 방침을 본격화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실질적 소비자보호 내부통제위원회 운영 △소비자보호 총괄임원(CCO) 2년 임기 보장 및 전담 부서의 독립성·전문성 확보 △소비자보호 중심의 성과보상체계(KPI) 설계 △지주회사의 소비자보호 역할 강화 등입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단순한 민원 대응을 넘어 '이사회·내부통제·성과보상체계·지주사 관리'까지 전사적인 소비자보호 체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평가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찬진 금감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를 주제로 전 금융권 간담회를 열고 "새 정부가 금융소비자보호를 핵심 과제로 삼은 만큼, 금융회사 스스로 소비자보호 중심의 거버넌스를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 원장이 취임 후 금융업권별 간담회와는 별도로, 금융소비자보호만을 주제로 업계 전체가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는 특히 금융사들의 내부통제 강화와 소비자 중심 경영문화 확립을 주문했습니다.
간담회에는 4대 시중은행장을 비롯한 19개 금융회사(은행 6사, 저축은행 2사, 생보 3사, 손보 3사, 여전 1사, 금투 4사)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했습니다.
소비자보호 '컨트롤타워'로 이사회 지정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모범관행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이사회를 소비자보호의 최종 의사결정기구로 명문화한 점이 눈에 띕니다. 금융사의 이사회는 상품 설계부터 사후관리까지 전반적인 소비자보호 전략을 승인하고, 내부통제위원회의 활동을 직접 관리·감독해야 합니다. 특히 소비자보호 리스크가 높은 회사는 소비자보호 전문성을 갖춘 이사 선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성이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입니다
대표이사와 주요 임원이 참여하는 소비자보호 내부통제위원회는 경영계획, 성과보상체계, 주요 민원 대응 등 핵심 사안을 직접 조정·의결합니다. 단순 보고 절차가 아니라, 상품개발·판매·준법감시를 총괄하는 임원들이 함께 참여해 실질적인 통제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됐습니다.
소비자보호 담당임원(CCO)의 독립성·전문성도 제도적으로 강화했습니다. 영업부서와 이해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겸직을 제한하고, 재무성과 연동 평가를 금지했습니다. CCO에게는 소비자보호 핵심 사안에 대한 '거부권'과 개선요구권이 부여돼 형식적인 자리에서 벗어나 사실상 내부 견제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9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열린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관련 전 금융권 간담회'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사진=임유진 기자)
KPI '단기 실적'에서 '소비자 이익'으로 전환
금융사의 KPI는 이제 민원 발생, 불완전판매 페널티, 소비자보호 지표를 반영해야 합니다. 특정 상품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 상품별 가중치와 배점을 균형 있게 설계하고, 내부통제위원회가 KPI의 적정성을 평가해 이사회에 보고하는 체계도 의무화 했습니다. 금융당국이 금융사의 영업실적보다 소비자 이익을 우선하는 구조가 제도적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기조를 분명히 했다는 평가입니다.
금융지주회사와 금융복합기업집단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주사가 자회사들의 소비자보호 수준을 총괄 관리하고, 자회사는 이에 성실히 협조해야 합니다. 지주 차원의 정책 수립, 성과평가 반영, 내부통제 점검, 협의회 운영 등이 명문화되면서 그룹 차원의 균질한 소비자보호 문화 정착을 요구했다는 분석입니다.
이 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홍콩 ELS 사태'를 언급하며 "단기성과 중심의 영업 관행과 미흡한 내부통제가 반복적으로 소비자 피해를 양산했다"면서 "이는 단순한 통제 실패를 넘어 거버넌스의 근본적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최근 카드사와 보험사에서 발생한 대규모 보안사고를 사례로 들며 "금융사는 단 한 번의 사고로도 막대한 비용과 신뢰 상실을 감수해야 한다"며 사전 예방 중심의 거버넌스 강화를 촉구했습니다.
이어 "최고경영진의 낮은 관심과 이익 중심 경영이 내부통제 실효성을 떨어뜨렸다"며 "이제는 CEO와 이사회가 직접 나서 소비자보호 중심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금감원은 모범관행 준수 우수 회사에 대해 각종 인센티브도 제공할 방침입니다.
소비자 민원과 금융범죄 대응에 대한 당부도 이어졌습니다. 금감원은 접수된 민원이 2022년 8만7000건에서 2024년 11만6000건으로 급증했으며, 보이스피싱·불법사금융 등 민생 금융범죄도 꾸준히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원장은 "민원과 분쟁은 감독당국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약관 및 판매 관행 개선과 자체 민원관리 역량 강화, 보이스피싱 차단 시스템 고도화 등을 당부했습니다.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가장 시급한 과제"
이 원장은 금융사 CEO들과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는 금융권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며, 정부와 금감원도 이를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금융사고는 단 한 번으로도 막대한 비용과 신뢰 상실을 초래한다"며 "사전 예방 중심의 거버넌스 구축이 필수"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소비자보호는 비용이 아니라 금융회사의 지속성장과 이익을 위한 투자"라며 최고경영진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민원·분쟁 증가와 금융범죄 확산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습니다. 이 원장은 "감독당국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금융권 스스로 약관·판매 관행을 개선하고 민원관리 역량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최근 급증하는 보이스피싱·보험사기 등 민생 금융범죄에 대해 금융권이 이상거래 탐지시스템 고도화, 보이스피싱 문진 강화 등 사전 예방 체계를 강화할 것도 당부했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금융사 CEO들은 소비자 신뢰 회복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거버넌스 강화가 선결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그러면서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인프라를 확충하고 건전한 경영관행 및 조직문화 개선 등을 최고 경영진의 책임 하에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화답했습니다. 소비자보호 조직의 인력·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과 소비자보호 우수회사에 대한 과감한 인센티브 부여도 건의했습니다.
한편 검은색 옷을 단체로 입은 금감원 직원 수십 명은 간담회가 열린 회의장 복도에 긴 줄로 서서 '금소원 분리 철회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조직개편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습니다. 금감원 직원 700여명 가량은 이날 오전에도 본원 로비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를 철회하라', '공공기관 지정을 철회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했습니다. 이 원장은 출근하면서 굳은 표정으로 직원들을 지나쳤으며, 공공기관 지정 등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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