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한국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한 가운데 정부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국익 최우선 기조로 협상에 임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3500억달러 직접투자 등 미국의 무리한 요구와 양측 간 이견으로 후속 협의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지만 일방적 희생에 선을 그으며 데드라인을 일축한 것입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미 관세 협상의 기본 전략을 묻는 말에 "대전제는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국익과 우리 경제의 카파(Capacity, 생산능력)를 봐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문서화하지 않는다"며 원칙을 밝혔습니다.
미국 직접투자 "수용하기 어렵다"
한국은 앞서 미국이 예고한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3500억달러(약 48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를 조성하기로 지난 7월30일 미국과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3500억달러 투자를 전액 현금으로 조달하고, 그에 대한 운용·수익 환수 등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미국의 요구에 후속 협의는 교착상태입니다.
이에 대해 김 총리가 '국익 최우선' 기조를 강조하며 미국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언한 것입니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대미 투자펀드 구성과 관련해서 미 상무장관이 3500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500조원에 가까운 이 기금의 투자처를 미국이 결정을 하고, 손실 리스크는 한국이 부담하고, 수익의 90%를 미국에 귀속되는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며 "대체적으로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김 총리는 "확인해드리기 어렵다"면서도 "우리 협상팀에서는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그러한 방식과 기조에 대해서는 국익 차원에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협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인사를 나눈 뒤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미 투자 잔액이 9626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3500억달러의 투자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는 "1500억달러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나머지 2000억달러는 반도체나 원전, 에너지 등을 포함하고 있다"며 "전략 산업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설정하는 것이 원래 우리 협상팀의 기조"라고 말했습니다.
김 총리는 "당장 우리한테 부담되는 측면이 있지만 길게 보면 한·미 상호 간 윈윈이 되면서 되레 우리 경제의 장기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며 "꼭 액수만 가지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진단했습니다.
권 의원은 "문제는 3500억달러 규모 자체가 아니라 조달하는 방식"이라며 "현금을 얼마나 투입할 것인가, 향후 이익과 손해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분배할 것인가, 또 결정은 누가 할 것인가 등 협상의 세부 내용이 정말 중요하다"고 짚었습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직접투자에 대한 정부 입장을 묻는 이언주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협상 과정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기 곤란하다"면서도 "우리나라의 국익과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서 서로 치열하게 협상 중에 있는 과정"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어 "공정성과 합리성, 그 기준하에서 우리 국익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부연했습니다.
"전 산업에서 파업"…노봉법 비판에 "가이드라인 마련"
이날 대정부질문에서는 한·미 관세 협상뿐만 아니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과 상법 개정에 따른 기업의 경영 여건 악화에 대한 지적도 나왔습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고 불리는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에 대한민국 전 산업에 걸쳐서 현재 노동쟁의 파업이 벌어지고 있다"며 "현 정권이 관세 협상의 성공 포인트라고 발언했던 마스가 프로젝트도 노조들이 배를 띄우기 전에 파업을 하고 있어 좌초가 우려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에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노조든 기업이든 어느 정도 소통을 하고, 필요한 부분은 정상화는 해야 한다"며 "다만 그 과정에서 사용주 개념, 실질적 지배 등 불확실성의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의 대정부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구 부총리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례나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시장에서 과도하게 우려하지 않도록 하는 범위 내에서 가이드라인과 규정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김 의원은 "지금과 같은 상법 구조라면 기업들은 투자를 진중하게 고민하기 어렵다"면서 "주주들이 투자보다 배당금을 더 많이 달라고 얘기하면 투자는 어떻게 하겠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구 부총리는 "우리 배당률이 중국보다 낮다. (한국 배당률이) 30% 정도이고, 중국은 40%"라며 "어쨌거나 기업이 돈을 벌어서 배당을 하는 건 맞다고 본다"고 피력했습니니다.
그러면서 "다만 경제부총리로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기업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서 기업을 지원해 주고, 성장을 통한 우리 한국 경제의 발전에 중점을 두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