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똥: 잃어버린 퍼즐 조각
2025-09-25 06:00:00 2025-09-25 06:00:00
매일 소 90만마리가 도축장에서 숨을 거둔다. 380만마리의 돼지, 2억마리의 닭도 죽는다. 
이 숫자가 실감 나지 않는다면, 문명학자 바츨라프 스밀의 말을 들어보라. 인간과 가축을 합한 바이오매스가 육상 포유류 전체 바이오매스의 97%를 차지한다. 야생 포유류의 비중은 이제 2.8%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35%(칼로리 기준)를 가축이 먹는데, 이렇게 거대한 생명 공장을 먹이는 사료를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냈을까?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것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한 원소 덕분에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질소. 대기의 78%를 차지하는 이 무색무취의 기체는 가장 흔하면서 가장 먼 존재였다. 질소는 모든 단백질과 DNA의 핵심 구성 요소지만, 대기 중 질소는 두 원자가 삼중 결합된 상태로 붙어 있어 식물이 흡수할 수 없다. 안정된 상태를 깨는 방법은 하늘의 번개와 콩과 식물 뿌리에 존재하는 뿌리혹박테리아밖에 없었다. 
 
19세기 말 인구는 급격히 치솟고 농업 생산력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유럽 나라들은 비료를 구하기 위해 바닷새의 똥인 ‘구아노’를 찾아 지구 곳곳을 헤맸다. 심지어 미국은 1856년 ‘구아노섬 법’을 제정해 구아노가 있는 무인도라면 어디든 점령할 수 있는 권리를 자국민에게 부여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20세기 초 한 과학적 발견이 지구를 ‘질적으로’ 바꾼다.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가 대기 중 질소를 철 계통의 촉매를 사용해 약 200기압, 400~500℃의 환경에서 암모니아를 만드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이로써 비료를 만들어 식량 문제를 해결했는데, 말 그대로 ‘공기를 빵으로 바꾸는 연금술’이었다. 
 
현재 지구 인구의 절반이 하버-보슈법으로 만든 질소비료 덕분에 생존하고 있다. 우리 몸의 질소 원자 중 절반 이상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인류는 자연의 질소 순환을 넘어서는 인공 질소를 매년 1억1200만톤 생산한다. 자연이 육지에서 고정하는 질소량보다 많다. 우리는 이미 지구 질소 순환의 주인이 되었다. 
 
모든 혁명에는 대가가 따른다. 질소비료를 생산하려면, 번개처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농경지에서 뿌려진 질소 비료는 ‘아산화질소’라는 온실가스로 대기에 배출된다. 화학비료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8~2.4%를 차지한다. 
 
질소는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 부영양화를 일으킨다. 멕시코만의 ‘데드존’은 한반도 면적에 맞먹는 크기로 확산됐다. 우리나라 남해에서도 적조가 연례행사가 됐다. 산소가 고갈된 바닷속에서는 고래도 새우도 살 수 없다. 생명을 부양하는 질소가 죽음의 바다를 만든 아이러니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태양광을 활용해 사람의 소변을 비료로 전환하는 해법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워터>에 제시했다. 전기가 이온을 끌어당겨 소변 중 질소 성분을 모아 농업에서 흔히 쓰이는 비료인 황산암모늄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인류가 매년 배출하는 소변이 50억톤이다. 이를 모아 농경지에 공급하는 시스템을 지구적으로 설계하면 어떨까? 녹색 유토피아의 퍼즐 조각 하나를 찾은 것 아닌가? 
 
우리는 질소를 정복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질소에 의존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질소의 역습이 시작됐다. 우리는 자연의 리듬에 맞춘 과거의 농업으로 돌아가고, 순환의 연결 고리를 복원하는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유기농업의 확산, 정밀 농업을 통한 비료 사용 최적화,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감축을 통한 자원 효율성 증대 등 다면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남종영 KAIST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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