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독감 및 코로나19 예방접종 포스터. (사진=질병관리청)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일본이 이례적으로 이른 시점에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을 선언했습니다. 10월 초 기준 전국에서 6000건이 넘는 확진이 보고되며 100여 개 학교가 문을 닫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10월3일을 기해 전국적 유행(epidemic) 상태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통상 11월 말 이후 본격화되던 독감이 올해는 무려 한 달 이상 앞서 찾아온 것입니다.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Nature)는 14일 보도를 통해 “일본의 조기 독감 유행은 지역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곧 겨울을 맞는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에 새로운 감염 확산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10월에 유행급 환자, 전례 드물어”
WHO 인플루엔자연구협력센터의 이언 바(Ian Barr) 부소장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10월에 일부 환자 발생은 있을 수 있으나, 유행(epidemic) 수준으로 확산된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9월 한 달 동안 일본에서 독감으로 입원한 환자 287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14세 이하 어린이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몇 년간 바이러스 노출이 줄면서 젊은층과 노년층의 ‘면역 공백(immunity gap)’이 커진 점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남반구 H3N2형이 북반구로, 여행객 급증이 ‘촉매 역할?’
현재 일본 내 유행 바이러스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지만,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겨울 동안 크게 번졌던 인플루엔자 A형 H3N2가 주요 후보로 지목됩니다. 호주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여행객이 급증하면서, 남반구 겨울철에 유행하던 바이러스가 북반구로 옮겨붙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말레이시아 모나시대학(Monash University)의 비노드 발라수브라마니암(Vinod Balasubramaniam) 교수는 “국제 이동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면서 바이러스의 ‘계절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며 “기후 변화와 맞물려 감염 패턴의 예측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네이처가 보도했습니다.
기후 변화도 배경 요인
기온과 절대습도가 낮을수록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서 더 오래 생존합니다. 과거 연구에서도 급격한 기온변화나 건조한 날씨가 바이러스 확산을 촉진한다는 결과가 다수 보고됐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아시아 지역의 이상기온과 강수 패턴 변화가 잦아지면서, 전통적인 ‘겨울철 감염’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일본은 여름 폭염 이후 급격한 기온 하락을 겪고 있어, 호흡기 바이러스 확산에 유리한 환경이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기상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동남아·오세아니아도 잇단 ‘조기 독감’
조기 독감은 일본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미 6000여명의 학생이 감염돼 일부 학교가 휴교 조치를 취했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지난 8~9월 사이, 평년보다 한 달 이상 빠른 시점에 독감 환자가 급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남반구의 감염 확산이 북반구 겨울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계절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코로나19 같은 전 지구적 대유행(pandemic)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남반구는 이미 더운 계절에 접어들어 바이러스 확산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발 바이러스가 동아시아 이웃 국가로 퍼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WHO 협력센터의 바 부소장은 강조했습니다.
한국도 ‘조기 접종·조기 감시’ 체계 가동해야
국내 전문가들은 일본의 조기 유행이 우리나라의 ‘예고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국, 중국, 대만 등 겨울철로 향하는 나라들은 이른 시점부터 유행 감시망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계절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시기를 앞당기고, 소아·노인층 중심의 감염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학교·요양 시설의 마스크 착용 및 환기 지침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울시는 어제(15일)부터 어르신을 대상으로 독감(인플루엔자)과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무료로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65세 이상 어르신은 의료기관 방문으로 두 가지 백신을 동시에 접종할 수 있습니다. 75세 이상은 15일부터, 70~74세는 20일부터, 65~69세는 22일부터 접종을 시작합니다.
일본의 조기 인플루엔자 유행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겨울철을 앞둔 국가들에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더운 계절에도 바이러스가 잠복하며, 특정 기후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계절 불균형’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본발 독감 유행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감염의 계절’을 반영한 새로운 시대적 징후일 수 있습니다. 호흡기 증상 있다면 신속·정확하게 검사를 받는 등의 빠른 대처가 필요합니다.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5-03367-z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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