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버려질 카카오 껍질이 초콜릿을 구하다
음식물 쓰레기를 되살리는 '업사이클링 푸드' 혁명
2025-10-16 10:20:20 2025-10-16 14:13:35
다른 곡물 가루 대비 높은 식이섬유와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리하베스트(Re:Harvest) 리너지 가루. (사진=리하베스트)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을 때마다 우리는 엄청난 낭비의 뒷면을 잘 알지 못한 채 달콤함을 즐깁니다. 세계 각지의 카카오 농장에서 수확된 카카오 열매는 세척과 절단을 거쳐, 그 속의 씨앗만이 귀하게 쓰입니다. 하지만 씨앗은 전체의 고작 30%. 나머지 70%의 과육과 껍질은 대부분 버려집니다. 
 
스위스 취리히의 초콜릿 제조사 배리 칼리바우트(Barry Callebaut)는 이 ‘버려진 70%’에 주목했습니다. 자회사 카보스 내추럴스(Cabosse Naturals)는 카카오 과육과 주스를 이용해 음료와 아이스크림, 과자, 유제품 등에 활용 가능한 천연 감미료를 만들어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되살리는 산업’, 즉 ‘푸드 업사이클링(food upcycling)’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8%의 온실가스, 음식이 썩어 생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30%, 약 10억톤이 매년 버려집니다. 미국에서는 이 비율이 상당히 높아서 40%에 달하며, 약 1450억끼니의 식사가 그대로 폐기됩니다. 
 
이렇게 버려진 음식물은 매립지에서 썩으며 메탄가스를 내뿜게 됩니다. 그 양은 항공산업 전체의 세 배,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8%를 차지합니다. 
 
기후행동단체 프로젝트 드로다운(Project Drawdown)은 식품 폐기량을 205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면 탄소배출량 88.5기가톤(Gt)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브리검영대 조너선 커쇼(Jonathan Kershaw) 교수는 “음식물 쓰레기는 단순히 음식이 썩는 문제가 아니라, 그 생산과 운송, 노동의 모든 자원이 함께 낭비되는 문제다”라고 말합니다. 
 
맥주 찌꺼기·치즈 유청·포도씨까지
 
업사이클링의 물결은 초콜릿을 넘어 맥주, 유제품, 와인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스타트업 업사이클드 푸즈(Upcycled Foods)는 맥주 양조 후 남는 곡물을 이용해 일반 밀가루보다 식이섬유 3.5배, 단백질 2배 높은 ‘리그레인드 슈퍼그레인+(ReGrained SuperGrain+)’ 밀가루를 만듭니다. 또 다른 기업 웨이워드 스피릿(Wheyward Spirit)은 치즈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유청을 활용해 위스키 향의 프리미엄 증류주를 만듭니다. 와인 제조 후 남는 포도씨를 버리지 않고 고급 포도씨유로 바꾸는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호주의 아이 엠 그라운디드(I Am Grounded)는 2019년부터 커피 열매를 에너지 바로 가공해 1만5000kg 이상의 열매를 절약했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커피가 수확되어 소비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식물의 생물량 중 95% 이상이 버려집니다. 이는 씨앗에 대한 수요는 있지만, 주변 과일이나 식물의 다른 부분에 대한 수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와 일본에서 운영되는 크러스트(Crust) 그룹은 레스토랑 및 호텔과 협력하여 음식물 쓰레기 감축을 지원합니다. 이 회사는 주로 잉여 빵과 기타 재료를 맥주로, 잉여 과일 껍질을 무알코올 과일 주스로 업사이클링합니다. 크러스트는 잉여 식품 파트너사와 함께 맞춤형 브랜드 제품을 제작하여 협력 관계를 유도하며, 다양한 식품의 업사이클링을 개방적으로 추진합니다. 
 
에스토니아의 ÄIO는 식품, 농업, 목재 산업의 폐기물 흐름을 활용해 식품 및 화장품용 지방 대체물을 생산합니다. 이들의 제품은 버터, 오일, 영양효모 등의 지속 가능한 대안 역할을 합니다. ÄIO 제품은 팜유 산업 대비 연간 160kT의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합니다. 
 
소비자 인식의 장벽, ‘쓰레기 음식’ 프레임
 
문제는 소비자 인식입니다. C&I 뉴스가 소개한 Brigham Young University의 커쇼(Kershaw) 교수팀이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업사이클 식품’에 대한 반응을 실험한 결과는 흥미롭습니다. 
 
‘음식물 폐기물로 만든 제품’ ‘식품 생산에서 남은 부산물을 활용한 제품’ ‘식품의 모든 부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제품’ 등 세 가지 설명 중, 소비자들이 가장 긍정적으로 반응한 것은 세 번째였습니다. ‘쓰레기를 재활용했다’는 표현보다 ‘자원을 아껴 썼다’는 ‘절약적 프레이밍(frugal framing)’이 심리적 거부감을 줄였다는 것입니다.
 
“‘업사이클’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낯섦보다, ‘낭비 없는 소비’라는 가치로 설명할 때 사람들은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커쇼 교수의 설명입니다. 
 
영양적 가치까지 더한 ‘착한 음식’
 
흥미롭게도 이런 업사이클 식품은 일반 식품보다 건강한 경우가 많습니다. 카카오 과육이나 맥주 부산물처럼 버려지던 부분에는 식이섬유, 항산화제, 파이토케미컬,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합니다. 섬유질이나 단백질이 많아지면 질감과 향이 달라지지만 발효나 숙성 기술을 적용하면 오히려 깊은 풍미를 얻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식품산업의 구조적 전환 없이는 업사이클 혁명이 발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재의 식품 소비 시스템은 ‘사서-쓰고-버리는’ 선형경제(linear economy)인데 이를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로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업사이클링은 단순히 ‘음식물 재활용’이 아니라, 자원 효율을 극대화하는 산업 생태계 재편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부산물이 흩어져 있어 이를 모으고, 가공·저장·운송하는 시스템을 새로 세워야 하는 물류와 인프라 도전이 필수입니다. 2021년 537억달러 규모였던 업사이클 식품 시장은 2031년 970억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SPC삼립은 샌드위치용 식빵 테두리 껍데기를 맥주 원료로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빵맥주’ 제품을 개발했고, 현재 판매처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은 회사 내 벤처 및 스타트업과 함께 밀기울을 활용한 대체 밀가루 ‘리너지 밀기울분’을 개발했으며, 이를 뚜레쥬르 일부 식빵에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맥주박을 활용해 영양 강화 가루 및 간식 제품을 개발한 오비맥주와 리하베스트의 협업은 비교적 초기부터 주목받은 사례입니다. 커피박을 활용하여 굿즈나 건축자재를 만드는 스타벅스 코리아나 한국맥도날드도 유사한 움직임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푸드 업사이클링’은 외국에 비해 영역도 적고 영향력도 미미합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보다 책임 있는 자세와 적극적인 시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단순한 재활용의 차원이 아니라, ‘낭비 없는 생산’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