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 ‘세기의 소송’이 남긴 질문
2025-10-16 16:44:13 2025-10-16 19:12:53
‘세기의 이혼’이라 불렸던 최태원 SK회장과 노소영 아트나비 관장의 재산분할 소송이 우선 최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1조3800여억원대의 재산분할을 명했던 2심 판결을 대법원이 파기환송 한 데 따른 결과다. 알려져 있듯 재판의 핵심 쟁점은 SK 쪽으로 흘러갔다고 노 관장이 주장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의 인정 여부였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 반환 청구 금지의 원칙을 적용했다. 즉, 불법행위에 기한 재산의 이전은 그 자체가 법적 보호 가치가 없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어떤 급여를 주장하거나 분할 청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피고의 부친 노태우가 1991년경 원고의 부친 최종현에게 300억원 정도의 금전을 지원하였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며 “노태우가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하여 함구함으로써 이에 관한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하여 법의 보호 영역 밖에 있다”고 못 박았다. 다시 말해 뇌물인 300억원을 노 관장의 ‘기여’로 참작해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시킨 2심 판단은 법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사실 두 사람 사이의 벌어진 수조 원대 재산 싸움으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지만, 이번 소송은 두 사람 개인의 다툼을 넘어 한국 사회 오랜 병폐인 정경유착의 그림자를 다시 끄집어냈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돌이켜봐도 애초 숨겨왔던 비자금 300억원을 조 단위의 재산분할 근거로 삼았던 노씨 측의 논리는 분명 놀라운 것이었다.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야 하는 것이 재산분할의 목적이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자신이 정경유착의 ‘산증인’이었다는 점을 자인했다는 것은, 소송 전략의 유불리를 떠나 사회적 감수성과 책임을 망각한 태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 300억원이 건네졌다면, 엄밀히 말해 그 돈의 주인은 노씨가 아니고 국민 모두라고 봐야 옳다. 
 
최태원 SK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해 4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물론 노씨 측도 억울할 수 있다. SK가 지금의 재계 2위의 자리에 오르는 데에 노태우 정권기 유공(현 SK에너지)과 한국이동통신(현 SKT) 같은 공기업을 헐값에 인수한 것이 그 토대가 됐다는 걸 세상 사람이 다 알지 않느냐 생각했을 수 있다. 자신은 그 한 실체를 공개했을 뿐이라 여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경유착을 아는 일과 그것의 지분을 요구하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권력과 한 몸이 돼 성장해온 재벌의 역사는 한국 경제에 여전히 깊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 재벌 개혁이라는 구호조차 사라진 시대, 정치권력보다 더 큰 힘을 갖게 된 경제권력은 이제 정경유착을 해야 할 필요성마저도 못 느낄지 모른다. 재벌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인가. 한국 사회는 정경유착의 부정적 유산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 세기의 소송이 우리에게 남긴 뒤늦은 질문들이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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