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위조하고 대출 부풀리고…은행권 금융사고 천태만상
2025-10-21 14:33:18 2025-10-21 15:27:21
[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올해 들어 책무구조도 도입 등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규제가 시행됐지만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금융사고가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사기형 대출, 허위 계약서, 위조 서류 등 수법이 다양합니다. 대부분 내부 심사 과정의 허점을 노렸다는 점에서 내부통제 부실이 여전하다는 지적입니다. 
 
허위 매수자·무단 인출…대출 심사 구멍
 
<뉴스토마토>가 21일 이정문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2025년 1~8월 은행권 주요 금융사고 현황'에 따르면, 금융사고 가운데 약 70%가 '사기 유형'으로 분류됐습니다. 은행 직원이나 외부인이 허위 서류를 제출해 대출을 부당하게 취급받거나, 임대차계약서를 위조하는 방식입니다. 장기 미분양 상가를 악용해 대출을 임의로 취급하거나 허위 매수자를 모집하는 등 배임 사고도 잇따랐습니다. 
 
사고 유형별로 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허위 서류를 이용한 대출 사기였습니다. 
 
국민은행에서는 상반기만 세 차례에 걸쳐 배임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4월 장기 미분양 집합상가를 담보로 허위 대출을 취급한 사건이 46억여원 규모로 보고됐으며, 7월에는 허위 매수자를 모집해 92억4800만원과 41억원 상당의 부당 대출이 이뤄졌습니다. 모두 '부동산 매입을 빙자한 대출 사기'로 분류됩니다. 
 
신한은행 역시 고객 예금을 무단 인출하거나, 지인 명의로 전세자금대출을 편취한 사례가 확인됐습니다. 1월에만 37억8400만원 상당의 고객 예금 예치액을 무단 인출한 사례가 발생했으며, 같은 달 지인 명의로 신용대출 및 전세자금 대출금 22억600만원 상당을 편취한 사례도 잇따라 터졌습니다. 8월에도 실제 현금 입금 없이 전산상으로만 입금 처리를 진행해 자금을 횡령하거나 불법 거래에 이용하는 '무자원 현금 입금 거래' 금융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하나은행에서는 허위 서류를 통해 대출금을 수령한 금융사고가 4월 두 차례 발생했으며 피해 금액은 각각 350억원, 30억9800만원에 달했습니다. 7월에는 47억9000만원 규모의 허위 서류를 통한 금융사고가 터졌습니다. 
 
우리은행에서는 5월 허위 신용장(L/C)을 이용한 매입 외환거래 사기가 발생했고 그 피해액만 1076억원에 달했습니다. 국내외 거래처 간 수출입 결제 과정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위조된 L/C를 믿고 대금을 지급한’ 전형적인 무역금융 사기입니다. 이 밖에도 허위 임대차계약서를 이용한 대출 사기가 4월과 7월에 걸쳐 발생했습니다. 금액은 각각 7억6600만원, 3억원 수준으로 외부 공시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농협은행의 경우 1월 직장 동료 간 투자 명목으로 신분증과 기타 서류를 도용해 대출금을 편취한 사례가 나왔습니다. 4월에는 외부인이 위조 서류를 이용해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사건이 일어났고 매매계약서를 이용해 257억여원을 부풀린 대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은행들은 인공지능(AI)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금융업 특성상 아직 인간이 해야하는 업무가 많기 때문에 허위 서류나 무단 예금 인출 등을 모두 잡아내기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고객도 은행원도 사람이다 보니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올해부터는 내부통제 부서를 개편해 담당 인원과 업무를 고도화하는 등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더욱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강화 방안 필요"
 
업계에서는 대형 시중은행의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금융사고는 지난 2015년 97건에 달하다가 2023년 36건까지 떨어졌지만, 지난해부터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5대 은행 금융사고 발생 건수는 89건입니다. 
 
사고 금액별로 보면 10억원 미만 금융사고가 총 48건으로 가장 많이 발생했습니다. 1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의 금융사고는 우리은행을 제외한 4개 은행에서 총 14건 발생했습니다. 100억원 이상 금융사고도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농협은행에서 각각 1건씩 발생했습니다. 
 
금융당국이 올해부터 주요 은행들을 상대로 책무구조도 도입과 함께 내부통제 이행 실태 점검 등에 나섰지만 대형 금융사고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책무구조도란 내부통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할 수 없도록 금융회사 임원별 담당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는 제도입니다. 지난 1월부터 주요 금융지주·은행 62곳을 시작으로 본격 도입돼 하반기부터 대형 금융투자사·보험사 67곳 등 총 129곳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금융사고 건수와 금액이 많아지고 수법도 연일 대담해지면서 책무구조도 도입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가 실질적 효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연이은 금융사고에도 이를 완전히 단절시킬 수 있는 제재가 나오지 못했다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구성원의 책임을 강조하는 내부적인 제재와 함께 회사의 책임을 더 엄정하게 묻는 금융당국의 두 가지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올해 은행권 금융사고가 단순한 개인 일탈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금융사고가 내부 직원들의 조직적 범행, 허위 서류를 이용한 부당 대출과 같은 시스템적 문제 때문"이라며 "내부통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빈번히 재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비대면 대출과 디지털 심사 확대는 대면 검증이 어려워지고 위조 신분증, 고도화된 사기 수법에 취약해 보안 리스크가 커졌다"면서 "심사 속도 증대와 맞물려 통제의 공백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며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올해부터 금융당국이 주요 은행들을 시작으로 책무구조도 도입과 함께 내부통제 강화를 강조하고 있으나 5대 시중은행 주요 금융사고 중 허위 서류나 허위 매수자를 활용해 대출을 받는 사례가 지속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부당 대출을 인공지능(AI)이미지로 구현한 모습. (사진=챗GPT)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