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국내 기업들이 잇달아 자사주 털어내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 압박이 거세지면서 선제적으로 보유 자사주를 줄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특히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은 단순한 규제에 그치지 않고 경영권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교환사채(EB) 발행과 우리사주 출연, 임직원 주식보상(RSU·PSU) 등과 같은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입니다.
서울 시내에서 본 마천루 모습. (사진=뉴시스)
2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발행된 교환사채(EB)는 3조853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조3333억원)에 비해 189% 늘어난 수치입니다. 발행 건수 또한 100건으로 전년 동기(43건)에 견줘 두 배 넘게 뛰었습니다.
정부여당은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취득 후 1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하는 조항을 포함한 3차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인데, 늘어난 EB 규모는 이에 대응한 결과로 보입니다. EB는 발행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나 타기업 주가와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으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자사주 보유 비중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주주가치가 희석될 수 있어 자사주 소각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도 적지 않지만, 올해 하반기에만 SK케미칼과 SKC, 일진홀딩스, DB하이텍, 하림지주 등 69개 상장사가 EB 발행 대열에 합류한 상태입니다. 이정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3차 상법 개정안 통과 가능성을 앞두고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본정책을 조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아직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않았지만, 연내 처리가 유력한 만큼 기업들은 향후 의무적 자사주 소각에 대비해 자사주 운용 여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국내 상장사들이 강제 소각해야 하는 자사주 규모는 7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만약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해온 기업이라면 지배구조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임직원 보상의 수단으로 자사주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차전지 기업인 에코프로는 최근 창립 기념일을 맞아 임직원에게 자사주 약 24만 주를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으로 지급하기로 했으며 한미약품은 지난 8월 신규 보상체계로 주식 기반 성과급(RSU·RSA)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고려아연과 보해양조는 우리사주조합에 자기주식을 무상 출연하는 방식으로 자사주를 처분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3차 자사주 매입(3조9119억원)을 포함해 최근 1년간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하고, 이 가운데 1조6000억원은 임직원 보상 목적으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성과연동 주식보상(PSU) 지급 등에 필요한 자사주는 추가 매입할 계획입니다.
한편 자사주 보유 비중 큰 기업에 대한 자사주 소각 요구도 거세지는 상황입니다. 특히 그룹 상장사 중 자사주 보유 비율이 27%가 넘는 롯데지주의 경우 자사주 소각 압박에 직면했습니다. 실제 고정욱 롯데지주 사장은 지난 13일 기재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자사주 대량 보유에 대해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박건영 KB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 통과 여부에 따라 지주회사들의 자사주 대응은 한층 활발해질 전망”이라며 “향후 지주회사들이 취할 수 있는 자사주 활용 전략은 크게 소각, 제3자에게 처분, 임직원 보상, 종류주식 발행으로 지주회사는 오너 일가 지분율 등 지분 구조와 재무 상황에 따라 이들 옵션을 조합해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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