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만의 '5·18 성폭력' 손배 소송…"배상 않겠다"고 버티는 국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성폭력 피해자들, 국가 상대로 손배 청구
7일 첫 변론기일 열려…피해자들, 계엄군의 '조직적 성폭력' 주장
5·18 조사위, 2023년 12월 '국가 피해에 따른 책임' 최초로 인정해
'국가 소송' 대리 나선 법무부…"소멸시효 완성됐다"며 배상 거절
2025-11-07 12:59:01 2025-11-07 15:53:39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5·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 당시 계엄군과 경찰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7일 시작됐습니다. 1980년 5월 피해가 일어났던 때로부터 무려 45년 만입니다. 법정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피해자들은 재판부에 "빨리 (판결) 해주세요. 45년 동안 기다렸어요. 너무 지쳤어요"라고 흐느꼈습니다. 
 
그런데 국가는 손해배상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1980년 5월로부터 시효를 계산할 경우 소멸시효(3년)가 이미 지났다는 겁니다. 하지만 앞서 대법원은 과거사 사건의 경우 '희생자로 공식 결정받은 날'을 기준으로 소멸시효를 따져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국가가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하는 꼴입니다.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인근에서 5·18민주화운동 피해 증언자 모임 '열매' 관계자들과 5·18 성폭력 피해자 성수남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5·18 당시 계엄군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며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재판이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판사 최욱진)는 5·18 성폭력 피해자인 김선옥씨 등 14명과 그들의 가족 3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40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관한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습니다. 법정은 피해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김씨 등은 지난 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무렵 계엄군과 경찰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습니다. 계엄군과 경찰이 시위 진압, 광주 외곽 봉쇄, 광주 재진입 작전, 시민 연행·구금 등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 피해자들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습니다. 가장 어린 피해자는 18살이었습니다.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들은 그동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용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김씨 등은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 폭로를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피해자들이 공개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증언하면서 5·18 성폭력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발족했고, 2023년 12월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조사위)가 이들의 피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5·18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이 처음으로 인정된 겁니다. 
 
김씨 등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선 결정적 계기는 윤석열씨의 12·3 비상계엄 선포입니다. 김씨 등을 대리하는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원고들은 (조사위 결정으로 배상 등 피해 회복이) 당장 해결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도 "12·3 계엄을 듣는 순간 얼어붙었고, 국가 상대 소송에 나서게 됐다"고 했습니다. 5·18은 1980년 5월17일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씨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것에 대해 반대하면서 시작되면 민주화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들은 지난해 12월12일 전두환씨가 12·12 쿠데타를 일으켰던 날에 맞춰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이날 첫 변론기일에서 피해자 측은 5·18 성폭력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하 변호사는 "일련의 과정이 군부의 조직적 지시하에 완벽히 통제된 상태에서 발생했다. 총과 대검으로 폭행·협박·상해를 동반해 피해가 발생했으며 상당수 행위가 2~5인 공동으로 이뤄졌다"며 "비상계엄 중 이런 일이 예상됐음에도 규율하지 않은 국가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국가는 이 사건이 소멸시효가 끝났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거부했습니다. 국가의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부 측은 "(이 사건의) 소멸시효 기산점을 1980년 5월로 본다"며 "(3년이 지났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 측 이야기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위배됩니다. 앞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과거사 사건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소멸시효를 '과거사위로부터 희생자로 결정받은 날'로부터 계산해 3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 측도 5·18 성폭력에 대한 조사위의 공식 인정이 2023년 12월이기 때문에 소멸시효엔 문제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법무부는 일부 피해자들이 이미 보상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측은 "연행과 구금 등에 대한 보상이었지, 성폭력 사건으로 보상받은 사람은 없다"고 맞섰습니다. 
 
시민들은 5·18 성폭력에 대해서 국가가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날 재판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지현 전 검사는 "5·18 피해자들이 제 ‘미투’를 보고 용기를 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 많이 울었다"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다. '살아주셔서 감사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이들의 모습은 또다른 피해자들에게 커다란 희망과 용기가 될 것"이라며 "지난 45년이 한 개인이 고통과 편견을 이겨내고 혼자 생존하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국가가 응답해야 할 시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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