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카카오 김범수 창업자가 신입사원들에게 “AI 시대의 화두는 제대로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조언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때마침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는 노스웨스턴대 브라이언 우지(Brian Uzzi) 교수의 칼럼 ‘AI는 창의성을 점화할 수 있다’가 실렸습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AI는 우리의 창의성을 억누르는가, 아니면 확장시키는가?’
인공지능이 연구실을 넘어 업무와 일상 깊숙이 파고든 지금, 우리는 이 역설적인 질문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조합해 인간이 미처 떠올리지 못한 발상을 제시할 잠재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용자의 사고를 AI가 제시한 틀 안에 가두어, 오히려 인간의 창의성을 ‘납작하게’ 만드는 현상이 자주 목격됩니다.
AI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려면 ‘무엇(What)’이 아니라 ‘어떻게(How)’를 물어야 한다. (이미지=챗GPT 생성)
‘정답의 함정’과 사고의 고착화
우지 교수는 이 문제를 날카롭게 진단합니다. AI가 창의성을 해치는 게 아니라, 우리가 AI에게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AI에게 ‘무엇(What)’을 묻지 말고, ‘어떻게(How)’를 물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AI를 ‘지식 자판기’로 취급합니다. 연구자가 “테스트할 가설을 내놓으라”고 하거나, 기획자가 “참신한 아이디어 10개를 달라”고 지시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인간의 창의성을 오히려 위축시킵니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AI가 자신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전제합니다. 그래서 AI가 내놓은 첫 번째 답변을 쉽게 정답으로 수용해버리기 쉽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앵커링(Anchoring, 닻 내리기) 효과’라고 부릅니다. AI의 답변에 생각이 고정되어 탐색의 범위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AI에게 정답을 빨리 요구할수록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해결책의 폭은 줄어듭니다.
그렇다면 AI를 어떻게 써야 할까요? 우지 교수는 AI를 ‘정답 생성기’가 아닌 ‘생각의 파트너(Thought Partner)’로 대우하라고 제안합니다. 이는 ‘확산적 연상 과제(Divergent Association Task)’ 실험에서도 증명된 사실입니다. 참가자들에게 “서로 의미가 먼 단어들을 최대한 많이 나열하라”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이때 AI에게 단순히 단어 추천을 받은 그룹보다, “다양한 단어를 떠올리는 사고 과정을 알려달라”고 요청한 그룹의 성과가 월등히 높았습니다.
AI는 정답 대신 프레임워크를 제안했습니다. “먼저 운송수단, 가전, 음식 같은 카테고리를 정하고, 그 안에서 단어를 하나씩 골라보세요.” 이 조언을 들은 인간은 자신의 독창성을 더해 AI나 인간이 혼자 했을 때보다 훨씬 창의적인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의 방식’을 물을 때 인간의 창의성은 증폭됩니다.
‘과정 중심’ 활용법은 여러 전문가의 제언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와튼스쿨의 에단 몰릭(Ethan Mollick) 교수는 AI를 “매우 똑똑하지만, 가끔 엉뚱한 실수를 하는 외계인 인턴”처럼 대하라고 말합니다. “내 아이디어의 결함을 찾아 반박해줘” 또는 “스티브 잡스의 관점에서 이 기획안을 비판해줘”처럼 구체적인 역할(Persona)을 부여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비판적 사고를 자극하는 ‘토론 파트너’로 격상시킵니다.
링크트인 창업자 리드 호프만(Reid Hoffman)은 AI를 ‘인간 사고의 증폭기(Amplifier)’로 규정합니다. 창의성의 핵심은 “빠르게 시도하고 실패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는 AI로 오답과 초안을 빠르게 쏟아내고, 인간은 그 위에서 고차원적인 큐레이션과 판단을 수행하라고 조언합니다.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부담은 AI가 덜어주게 하고, 인간은 더 높은 차원의 조합과 편집, 융합을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비누상자 레이스에서 한 참가자가 손수 만든 무동력 차량에 탑승해 달리고 있다. 이 대회는 속도보다는 창의성, 독특한 디자인, 안전성 등이 중요하게 평가된다. (사진=뉴시스)
AI는 ‘이종 결합’에 탁월
창의성의 본질은 서로 무관해 보이는 영역을 연결하는 데 있습니다. 우주선 태양광 패널을 접기 위해 종이접기(오리가미) 원리를 공학에 도입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AI는 바로 이 ‘이종 결합’에 탁월합니다. 우지 교수는 AI에게 유체 역학 문제를 러시아 문학의 관점에서 해석하게 하거나, 사회 불평등 문제를 기존 모델이 아닌 전혀 새로운 논리로 설명해달라고 요청해볼 것을 권합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케빈 루스(Kevin Roose)의 조언처럼, 단순 검색은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이 두 개념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때 혁신이 일어납니다.
최고의 협업자는 동료에게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동료가 얼마나 똑똑해질 수 있는지 그 잠재력을 끌어내는 사람입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즉각적인 정답을 내놓아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는 논리적 경로를 묻고, 사고의 과정을 공유해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AI에게 ‘무엇(What)’이 아니라 ‘어떻게(How)’를 묻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질문의 차이가 우리의 창의성을 죽이느냐, 폭발시키느냐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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