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주요 대기업들이 지난해 자사주 소각 규모를 대폭 키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이들 대기업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2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전년 12조원 대비 70% 이상 증가했습니다. 정부·여당이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자본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에 재계가 우려 의견을 거듭 밝히면서도, 물밑에서는 이러한 정책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선제 대응에 나선 셈입니다.
서울 남산에서 시민들이 기업, 은행 등 빌딩이 밀집한 도심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2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지난해 말 기준 시가총액 상위 500대 기업 중 신규 상장사를 제외한 479곳의 자기주식 소각·처분 현황을 조사한 결과 80개 기업이 20조9955억원의 자사주를 소각했습니다. 기업별로는 삼성전자가 3조487억원의 자기주식을 소각해 가장 적극적이었습니다. 삼성전자의 소각 규모는 전체의 14.5%에 달합니다. 이어 HMM이 2조1432억원을 매입해 전량 소각했고, 고려아연도 전년도 매입분 중 1조8156억원을 소각 처리했습니다. CEO스코어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대비한 조치로 풀이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 올해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전년 대비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지난 2024년 주요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12조1399억원으로 집계되는데, 이와 비교해 73%가량 증가한 것입니다. 지난해 1차, 2차 상법 개정에 이어 최근 3차 상법 개정까지 자본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여당의 입법 드라이브가 강하게 걸리자, 기업들이 대표적인 주주환원책인 자사주 소각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같은 행보와 반대로 재계는 여전히 3차 상법 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자사주를 활용한 중장기 경영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 경영 불확실성이 더욱 확대됨과 동시에 방어 수단이 사라져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이미 많기에 추가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며 “주주환원 목적도 크지만, 기업들이 딴 곳에 써야 할 돈을, 자사주를 매입하고 이를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사용하는 기업들의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정부·여당은 ‘코스피 5000’ 시대를 앞두고 3차 상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3월 말 주주총회 시즌 전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이번 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에 본격 착수할 예정입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1차, 2차 상법 개정에서 제기됐던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는 등 재계의 우려는 상당 부분 과장돼 있다”며 “3차 상법 개정과 관련해 재계의 비자발적 취득 자사주의 소각 의무 면제 제안 등 받아들일 수 있는 기술적 부분들은 시행령으로 적용하더라도, 조금 더 발전된 자본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제도 정비가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