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프타 대란을 ‘탈플라스틱’ 계기로 삼아야
2026-04-15 06:00:00 2026-04-15 06:00:00
전쟁 여파로 ‘비닐·플라스틱 대란’을 겪으면서 한국 사회는 나프타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아가고 있다. 원유를 정제해 만든 나프타는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 석유화학산업 전반의 핵심 원료로 활용된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원유를 정제해 만든 나프타를 국내 정유사에서 구매하거나 중동에서 직수입한다. 원유 정제로 생산한 나프타를 분해하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이 나오고 이들을 가공하면 비닐과 플라스틱의 직접 원료인 폴리에틸렌(PE)과 폴리염화비닐(PVC), 폴리프로필렌(PP) 등 합성수지가 만들어진다. 
 
중동발 나프타 수급 불안은 먼저 석유화학업체의 공장을 멈추게 했다. 특히 중동에서 수입하는 나프타 물량 비중이 큰 중소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에틸렌과 프로필렌 물량이 줄면서 비닐을 만드는 공장들도 기계를 멈췄다. 비닐 수급에 대한 우려는 도시에서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 대란’으로 이어졌고, 농촌에서는 농업용 비닐과 부직포 수급 차질로 인해 각종 작물을 파종하는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비닐이나 비료처럼 많이 쓰이는 농자재는 통상 ‘농협 계통구매’ 방식으로 조달되기 때문에 단기적인 가격 급등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원재료 수급난이 길어지면 결국 계통 구매 단가 재협상과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
 
나프타 수급난은 종량제와 농사용뿐 아니라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위해 사용하는 투명 비닐봉투, 검은 봉투, 각종 플라스틱 포장재 등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제품에도 당연히 영향이 미치고 있다. 포장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소상공인들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고 원료 가격 급등으로 배달 용기가 부족해지면서 배달 위주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매장 운영 시간까지 줄이고 있다. 중동에서 발발한 전쟁으로 인한 영향은 이처럼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배달업계 자영업자들의 비닐·플라스틱 수급 불안이 커지면서 한편에서는 ‘다회용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자영업자들은 이번 플라스틱 수급 불안을 덜 느끼고 다회용기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다회용기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온력이 좋고 일회용 용기보다 오히려 위생적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아직 확산 속도는 더디다. 주문 단계에서 다회용기를 직접 선택해야 하는 구조로 실제 이용률은 제한적이며 수도권 밖에서 다회용기 서비스를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다회용기 사용 의무화 등 규제와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혜택 등을 포함하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수원도시공사 직원들이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시자원순환센터 야외 적치장에서 탈(脫) 플라스틱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재생페트(PET)와 종이 포장재 등 대체 포장재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식음료업계에서는 재생페트가 나프타 가격 충격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고, 종이 기반 포장재로의 전환을 검토하는 기업의 문의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종이 기반 포장재가 플라스틱보다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고 원료 수급도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제지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8위의 종이 생산국으로, 그 가운데 80%가 재생종이고, 그중 90%가 국내에서 재활용된 종이로 만들어진다. 그만큼 대외 변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일시적 충격에 따른 관심이 구조적 전환으로 이어지려면 재생 원료나 종이 소재를 쓰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이번 전쟁은 석유에 기반한 플라스틱 공급망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나프타 대란을 ‘탈플라스틱’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국제사회는 더 이상 플라스틱 오염을 방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플라스틱의 생산부터 유통, 폐기까지 전 생애주기를 규제하는 국제협약을 제정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유럽연합은 플라스틱 감량과 재사용 목표를 법으로 명시하는 등 규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12월 탈플라스틱 종합 대책 정부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안에 대한 시민사회의 평가는 비판적이었다. 플라스틱 감축 효과가 없는 대책이라는 지적과 함께 다회용기 사용은 한시적 지원 사업에 그쳤고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자율 시행에 맡기는 등 강력한 규제보다는 시민 선의에 기대는 부실한 대책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제는 플라스틱 원천 감량을 기반으로 하는 자원 순환 체계를 만들고, 재생원료나 식물원료, 바이오매스 등으로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원료 공급망을 지금부터 구축해야 한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최종본에는 변화된 상황과 여건을 적극 반영한 탈플라스틱 종합 대책이 담겨 있기를 기대한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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