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이어가면서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은행·보험권 자본규제 완화 정책의 효과가 반감되고 있습니다.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해 위험가중자산(RWA) 부담을 낮춰주고 있지만 환율 상승으로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 규모가 급증하면서 자본비율 관리 부담이 다시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규제 풀어도 효과 상쇄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특히 환율 상승은 은행들의 신용리스크 RWA를 끌어올리는 구조라 대출 확대 여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당국이 최근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고환율이 장기화될 경우 추가 완화책 마련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2분기 원·달러 평균 환율은 1500원대에 근접한 수준까지 상승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평균 환율 1465.16원으로 전분기 대비 14.18원 상승했는데요. 전분기 대비 상승폭을 놓고 보면 2분기 들어서는 상승폭이 2배 이상 확대됐습니다.
환율 상승은 은행들의 신용리스크 RWA를 직접적으로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은행들은 외화대출이나 해외투자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회계상 이를 원화 기준으로 환산해 자산 규모를 산정합니다. 환율이 오르면 달러 표시 자산의 원화 가치도 함께 상승하게 되고 그만큼 위험가중자산 규모도 커집니다.
RWA가 증가하면 분모가 확대되면서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하락 압력을 받게 됩니다. CET1 비율은 은행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로 금융당국과 시장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자본비율입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동일한 자본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환율 상승만으로 자본비율이 낮아질 수 있는 셈입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외화대출이나 해외 사업 비중이 큰 은행일수록 환율 변동에 따른 RWA 증가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환율이 급등하면 신규 대출 확대보다는 자본비율 관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금융당국이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해 자본규제 합리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은행권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발표하고 자본비율 규제가 실물경제 지원을 과도하게 제약하지 않도록 제도를 손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구조적 외환포지션 규제 개선, 과징금 등에 따른 자본부담 완화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구조적 외환포지션 규제는 해외 사업 확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율 변동 위험을 보다 합리적으로 반영하도록 개선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또 은행들이 금융사고에 따른 과징금과 자율배상에 따라 발생하는 자본비율 하락 부담도 일정 부분 완화하기로 했습니다.
은행들이 자본비율 관리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고 기업대출과 혁신산업 투자 등 생산적 금융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인데요. 하지만 최근 환율 급등으로 이러한 정책 효과가 상당 부분 희석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이어가면서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금융권 자본규제 완화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보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추가 규제 완화보다 시장 변동성 지켜봐야"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정부가 자본규제를 완화해도 환율이 위험가중자산을 끌어올리면서 정책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되는 상황"이라며 "현재로서는 환율 변동성에 따른 리스크를 모니터링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하기 쉽지 않은 여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환율 상승은 감독당국의 정책 의지와 무관하게 RWA를 증가시키는 변수입니다. 제도 개선을 통해 수조원 규모의 자본 여력을 확보하더라도 환율 상승으로 같은 규모의 RWA가 늘어나면 효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권은 최근 금융당국의 주문에 따라 첨단산업과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습니다. 대출을 늘리면 위험가중자산이 증가하기 때문에 충분한 자본 여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특히 금융당국은 최근 포용금융 확대와 중·저신용자 지원 강화, 정책금융 연계 확대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분야가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가중치를 적용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환율이 안정적일 때는 규제 완화 효과가 상당 부분 나타날 수 있지만 지금처럼 고환율이 지속되면 자본비율 관리 부담이 계속 따라온다"며 "대출 확대 여력이 생각만큼 크게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험업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험사들은 해외채권과 외화유가증권 등 대규모 해외투자 자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환율 상승은 자산 가치 증가라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지급여력비율(K-ICS) 등 건전성 지표 관리 측면에서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당국은 보험권에 대해 K-ICS 제도 개선과 장기 보장성보험 활성화 등을 통해 자본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다만 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건전성 관리 부담이 다시 커질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2분기 평균 환율 상승 폭이 1분기의 두 배를 넘어서면서 상반기 실적 발표 이후 금융권의 건전성 지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반영될 것"이라며 "결국 자본규제 완화보다 환율 안정이 생산적 금융 확대의 선결 조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과징금, 손실금 등에 대한 자본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의 은행·보험 자본 규제 합리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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