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에 정신 팔린 은행원들, 뒷전 밀린 노조추천이사제
"해봤자 안 된다" 분위기도 팽배
2025-03-20 14:30:06 2025-03-20 17:07:22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올해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금융권 노조추천이사제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지배구조 모범 관행을 도입하고 사외이사진의 다양성과 전문성 제고를 주문하면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기대했지만 물 건너간 모습입니다. 은행 노조도 사상 최고 실적에 따른 임금 인상과 성과급 협상 등 자신들의 처우 개선에만 골몰했다는 지적입니다. 
 
노조, 사외이사 추천 안 해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KB금융지주 노조에서 올해 사외이사 후보를 내지 않았고, 기업은행은 현 행장 취임부터 논의해온 노사 공동 추천 사외이사 도입에 진척이 없는 상태입니다.
 
KB금융(105560)은 지난달 차은영 이화여대 교수와 김선엽 이정회계법인 대표를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올렸습니다. 정관상 보장된 사외이사 임기(5년)를 모두 채원 권선주, 오규택 사외이사를 대신할 예정입니다. 기존 조화준·여정성·최재홍·김성용 사외이사는 임기 1년의 중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됐습니다.
 
노조 추천 사외이사 후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KB금융은 지난 2015년부터 의결권이 있는 주주들로부터 사외이사 후보 추천을 받고 있는데요. 노조에서도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2017년부터 노조 추천 이사 후보를 냈습니다. 다만 5% 안팎의 낮은 찬성률로 노조 추천 사외이사는 한 번도 선임되지 못했습니다.
 
기업은행(024110)도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출신의 이정수 서울대 법학전무대학원 교수와 석병훈 이화여대 경재학과 교수를 새 사외이사로 선임하면서 이사진 구성을 마쳤습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사외이사 후보가 추천되면 기업은행장 제청을 거쳐 금융위원장이 임명합니다.
 
기업은행은 김성태 행장 취임 이후 노조추천이사제 대신 노사공동추천 방식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습니다. 노조추천이사제는 그간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도입을 시도했는데, 2021년 수출입은행을 제외하면 아직 임명된 사례가 없습니다.
 
KB국민은행 노사는 통상임금의 300%와 600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임단협을 합의했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여의도 본점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지배구조 담론보다 처우 개선 욕심 
 
금융권에서는 은행들이 지난해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둔 이후 성과에 맞는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이 화두가 되면서 지배구조 강화 명분의 노조추천이사 도입은 뒷전으로 밀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이력이 있는 금융사들은 올해 초까지 임금단체협상(임단협)을 두고 노사 갈등이 극에 달했습니다.
 
KB금융의 주력계열사인 KB국민은행에서는 노조가 성과급 300%와 1000만원 지급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문턱까지 갔습니다. KB국민은행 노조는 임단협을 지난 1월까지 끌고 가면서 강경한 모드를 유지해왔습니다. 사측 입장에선 '성과급 잔치'라는 프레임이 부담스러워 노조 요구에 반대해왔습니다.
 
그러나 노조가 총파업 결의라는 카드로 맞대응했고, 노조원 찬반 투표 결과 95.59%의 압도적 찬성률로 쟁의행위가 가결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결국 최종 합의안은 통상 임급의 300%와 600만원 현금성 지급으로 마무리되며 노사 갈등이 봉합됐습니다.
 
기업은행의 경우에도 임단협과 경영평가 목표 조정에 노사 이슈가 집중된 모습입니다. 기업은행 노조는 임금 및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27일 사상 첫 단독 총파업에 돌입한 바 있습니다. 노조에서는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시중은행보다 약 30%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며 임금 정상화를 요구했습니다.
 
임단협 갈등에 이어 경영평가 목표를 두고서도 최근까지 노사 갈등이 이어졌습니다. 기업은행은 실적 목표인 경영평가 목표에서 퇴직연금 운용 성과와 카드 목표 대금에 대한 목표치를 올렸고, 노조에서는 과도한 실적 요구라며 강력 반발했습니다. 노조가 행장실 점거 농성 등을 이어간 후에야 사측에서는 경평 목표치를 낮추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경영평가와 총파업 이슈로 인해 노사 협의가 임단협 논의에 무게를 둬왔다"며 "아직 노조추천이사제가 도입된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매년 주총에서 노조추천이사 안건이 통과되지 않으니 제도적 여건이 갖춰지면 추진하자는 전략적 판단일 것"이라며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담론보다는 노조원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처우 개선에 힘을 쓰자는 분위기도 있다"고 했습니다.
 
기업은행 노조는 임금 및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27일 단독 총파업에 나선 바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사 앞에서 한국노총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가 총파업 출정식을 개최한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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