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기후변화 때문에 지구 반대편 사람에게 소송당한다
페루 안데스 산골 주민 독일 전력회사 RWE 상대로 민사소송 제기
독일 법원, RWE가 배출한 CO₂로 인한 안데스 빙하 호수 범람 위험 판단해야
이번 판결에 따라 거대 오염 유발 기업에 대한 소송 이어질 수도
2025-03-20 09:34:54 2025-03-20 14:41:50
독일 전력회사 RWE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페루 산악 가이드 사울 루시아노 리우야가 팔카코차 호숫가에 서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3월17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주 함(Hamm)에서는 역사적인 재판이 열렸습니다. 원고는 페루 우아라스(Huaraz)에 살고 있는 사울 루시아노 리우야(Saul Luciano Lliuya)라는 산악여행 가이드입니다. 피고는 1898년에 설립된 독일 전력회사 RWE( Rheinisch-Westfälisches Elektrizitätswerk). 독일 전력회사들 가운데 매출액 기준으로 4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 에너지 회사입니다. 재판이 열린 함에는 이 회사의 본사와 석탄화력발전소가 있습니다.
 
원고인 리우야가 살고 있는 우아라스는 안데스산맥 기슭,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 있습니다. 페루의 우아스카란 국립공원에서 멀지 않아 안데스 트레킹 명소로도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페루 안데스 지역에는 전 세계 열대 빙하의 70퍼센트와 빙하가 형성한 호수들이 많습니다. 팔카코차(Palcacocha) 호수는 그 중 하나로 리우야가 살고 있는 곳에서 1.6km 올라간 곳에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당 지역의 빙하가 녹고 있어 팔카코차 호수는 수위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호수 주변의 영구동토가 녹아 암석이 호수로 휩쓸려 들어갈 경우, 치명적인 홍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리우야의 집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거주하는 약 5만명의 주민들이 사는 마을도 휩쓸려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리우야는 2015년에 독일의 환경 인권 단체인 저먼워치(Germanwatch)와 지속가능성재단(Stiftung Zukunftsfähigkeit)의 도움을 받아 RWE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독일 민법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7년 독일 고등지방법원은 기후변화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민사소송이 합법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함에 있는 RWE의 석탄화력발전소. (사진=RWE 웹사이트 캡처)
 
리우야는 127년 전인 1898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시작한 이후 RWE가 배출한 탄소가 전 세계 인간이 발생시킨 탄소 배출량의 0.47 퍼센트를 차지한다고 산정했습니다. 따라서 팔카코차 호수가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둑을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 1만8000달러의 0.47퍼센트, 약 85달러의 배상을 RWE 측에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22년 독일 법원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이 페루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팔카코차 빙하 호수와 주변 지역을 조사했고 이번에 심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번 소송은 세계 각국에서 제기된 유사한 기후 소송 약 50건 가운데 최초로 심리되는 사례입니다. 이번 심리는 기후변화 때문에 일어나는 해빙으로 인한 팔카코차 호수의 급격한 수위 상승이 원고의 재산에 미치는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입니다.
 
원고 측 변호인 로다 페르하이엔(Roda Verheyen)은 저먼워치와의 인터뷰에서 “법원은 독일 민법에 따라 RWE가 홍수 위험에 대한 비례적 책임 유무를 결정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지금 기후 변화의 가장 명백한 영향인 빙하와 영구동토가 녹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 우아라스에 사는 제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페루에서 어떤 사업도 한 적이 없는 RWE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RWE는 만약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결이 난다면, 일반 운전자들조차 차량의 탄소 배출량 때문에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기후변화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며,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원고 측에 유리한 여론 조성과 홍보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저먼워치의 최고정책책임자(Chief Policy Officer) 크리스토프 발스(Kristoph Bals)는 자체 홍보자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석탄, 석유, 가스 산업의 대기업들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이번 사례는 화석 연료 회사들이 기존에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름 아닌 그들 사업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권리다. 이제는 거대 오염 유발 기업들(big polluters)이 초래한 피해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물을 때가 되었다. 개인의 소송에 맡길 일이 아니다.”
 
몇 주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이번 소송이 거대 오염 유발 기업에 책임을 묻는 길을 열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법원이 원고의 재산에 미칠 법적으로 유의미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RWE의 CO2 배출이 이 위험에 기여한 정도를 묻는 두 번째 증거 심리가 진행될 것이고 법원이 리우야의 재산이 법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결론 내리면 소송은 기각됩니다.
 
어떤 판결이 내려지든 독일 외에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겠지만, 이번 판결은 독일과 유사한 물권법을 가지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하나의 법적 기준을 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팔카코차 호수의 위성사진. (사진=구글어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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