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기부자의 면역계에서 채취한 인간의 T세포 전자현미경 사진. (사진=NIAID)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암 치료의 판을 바꾸는 '디지털 단백질 설계 시대'
"우리는 면역 시스템에 새로운 눈을 창조하고 있다." 덴마크공과대학교(DTU)의 감염병학자 티모시 젠킨스(Timothy P. Jenkins) 교수의 말입니다.
젠킨스 교수와 국제공동연구진은 암세포를 정확히 겨냥하는 '맞춤형 면역 단백질'을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수주 만에 설계하는 혁신 기술을 발견하고, 그 연구 결과를 지난 7월24일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했습니다.
이 논문의 교신저자인 젠킨스 교수는 "현재 개인별 암 치료 방법은 환자나 기증자의 면역 시스템에서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이른바 'T세포' 수용체를 찾는 것에 기반한다. 이는 매우 시간 소모적이고 어려운 과정이다. 우리 플랫폼은 AI 플랫폼을 활용해 암세포를 표적화하는 분자 키를 설계하며, 이 과정을 놀라운 속도로 수행해 새로운 선도 분자를 4~6주 내에 준비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기존에는 환자 맞춤형 T세포 수용체(TCR)를 선별하고 증폭하는 데 몇 달, 심지어 수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개발한 플랫폼은 특정 암 항원을 인식하도록 설계된 '미니바인더(mini-binder)' 단백질을 단 4~6주 만에 완성합니다. 이 미니바인더는 T세포에 탑재돼 암세포를 찾아내고 파괴하는 '디지털 미사일'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것은 정밀 암 치료가 대규모로 실현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구진이 암과 싸우기 위해 환자의 면역세포를 무장시키고 단백질 성분을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 있는 AI 플랫폼을 개발한 것입니다.
면역 시스템을 무장시키는 'IMPAC-T 세포'
이 혁신 기술의 핵심은 MHC(주조직적합복합체) 분자에 결합하는 펩타이드 항원을 인식하도록 설계된 pMHC 결합체입니다. 연구팀은 암에서 널리 알려진 항원인 NY-ESO-1과 HLA-A*02:01 조합(SLLMWITQC)을 표적으로 하는 고친화성 미니바인더를 설계하고, 이를 'IMPAC-T'라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의 인식 모듈로 삽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세포는 실험실 조건에서 NY-ESO-1+ 흑색종 세포를 정확히 인식하고 효과적으로 제거했습니다.
이 연구의 공동 저자인 크리스토퍼 하우룸 요한센(Kristoffer Haurum Johansen)은 그 감격의 순간을 "컴퓨터에서 설계한 단백질이 실제 실험에서 이렇게 정확히 작동하는 것은 연구자로서 놀라운 순간이었다"라고 표현합니다.
IMPAC-T 플랫폼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안전성 확보, 즉 AI 기반으로 가상 안전성 검사를 통해 치료 신뢰도를 높였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설계된 미니바인더가 건강한 세포의 pMHC와 교차 반응하지 않도록 '가상 안전 점검(Virtual Safety Check)' 단계를 도입했습니다. AI는 미리 훈련된 모델을 통해 다양한 조직에서 발현되는 MHC-펩타이드 조합과의 비의도적 결합 가능성을 예측하고, 고위험 후보를 걸러냅니다.
공동 저자인 시네 레커 하드럽(Sine Reker Hadrup) 교수는 "암 치료에서 정밀성은 필수적이다. 설계 단계에서 교차 반응을 예측하고 배제함으로써, 설계된 단백질과 관련된 위험을 줄이고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설계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전이성 흑색종도 정밀 타격… AI 면역치료의 '미래 청사진'
IMPAC-T의 효용성은 단지 NY-ESO-1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또 다른 환자 유래 신항원인 RVTDESILSY/HLA-A*01:01 조합을 표적으로 하는 미니바인더도 성공적으로 설계하고, 그 구조를 냉동전자현미경(cryo-EM)으로 검증했습니다. 이로써 알려지지 않은 항원에 대해서도 빠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셈입니다.
이 같은 접근법은 단순한 진단 도구를 넘어, 각 환자의 암세포에 맞춤형으로 제작된 치료제를 단기간 내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 맞춤 정밀의학의 획기적 진전이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큽니다.
치료까지 '5년 이내'… CAR-T를 넘는 혁신 노려
젠킨스 교수는 이 기술이 향후 5년 이내에 초기 임상 단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치료 과정은 현재의 유전자 변형 CAR-T 치료와 유사하지만, 단백질 인식 모듈이 TCR 대신 미니바인더로 대체된다는 점에서 훨씬 빠르고 다양화된 응용이 가능합니다.
"환자는 병원에서 혈액을 뽑고, 우리는 AI로 표적 단백질을 설계한다. 몇 주 내에 환자에게 맞는 '정밀 면역세포'를 다시 주입하는 미래는 이제 멀지 않았다"라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향후 림프종, 백혈병, 흑색종을 넘어 고형암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공동 저자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Scripps Research) 앤드류 워드(Andrew B. Ward) 교수는 "이번 연구는 면역치료의 기저 메커니즘을 재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우리에게 안겨줬다"라며 "인공지능이 생명과학의 설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강력한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DTU와 스크립스(Scripps) 연구진은 정밀의료, 면역치료, 단백질공학, AI 모델링이 융합된 미래 의학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AI가 새롭게 열어가는 정밀 면역의 지평이 의료의 미래를 어디까지 변화시킬지 더 궁금해집니다.
CAR T세포 치료법은 환자로부터 아페레시스 기계를 통해 혈액을 채취하고, 이 과정에서 T 세포(감염과 싸우는 백혈구)를 분리해 환자에게 다시 주입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과학자들은 T 세포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암 세포 표면의 특정 단백질(항원)을 인식하고 결합할 수 있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를 생성한다. 수백만 개의 CAR T 세포를 배양해 환자에게 재주입하면 백혈병,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 등 혈액암을 찾아내 파괴한다. (사진=NIH)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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