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B의 생분해 개념도. (사진=Polymer Degradation and Stability)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지구촌을 떠도는 바다 쓰레기 중 상당수는 우리가 일상에서 쓰고 버린 비닐봉지, 포장재에서 비롯됩니다. OECD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은 약 3억5000만톤, 그 중 약 170만톤이 바다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는 대양의 해류에 갇혀 '태평양 쓰레기 지대' 같은 쓰레기 섬을 만들고, 일부는 심해로 가라앉아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신슈대학 연구진이 심해 855미터에 직접 친환경 플라스틱을 넣고 13개월간 관찰한 결과, 플라스틱의 80% 이상이 실제로 사라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2025년 10월호 학술지 Polymer Degradation and Stability에 게재가 확정되었고, 지난 7월1일 온라인으로 공개되었습니다.
"13개월간 바다 속에서 80% 분해"…기존 바이오플라스틱은 그대로
이 연구는 어떤 플라스틱이 진정으로 친환경인가를 밝혔다는 면에서 상당히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바다 속에서 13개월 만에 분해된 플라스틱의 이름은 'LAHB'로 명명된 미생물 합성 폴리(D-lactate-co-3-hydroxybutyrate)입니다. 이것은 공학적으로 개량된 대장균(Escherichia coli)을 이용해 생합성된 플라스틱입니다.
이 연구는 일본 신슈대학의 타구치 세이이치(Seiichi Taguchi) 교수, 일본해양연구개발기구(JAMSTEC)의 이시이 슌이치(Shun'ichi Ishii) 박사, 군마대 식품과학연구소의 카스야 켄이치(Ken-ichi Kasuya) 교수가 주도했습니다. 신슈대학의 보도자료 제목은 'LAHB: 해양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입니다. 해양 플라스틱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연구팀은 일본 하츠시마 섬 앞바다 수심 855m 지점에 LAHB 필름 2종과 기존 바이오플라스틱 PLA 필름을 나란히 설치했습니다. 13개월 후, LAHB 중 락테이트 함량 13% 필름은 82% 이상 무게가 줄었고, 6% 함량 필름도 비슷한 수준의 분해가 확인됐습니다. 표면에는 균열이 생기고 다양한 형태의 미생물이 붙은 ‘바이오필름’이 생성됐습니다. 반면, PLA 필름은 아무런 분해 흔적도 없이 그대로였습니다.
"우리 연구는 미생물 유래 젖산 기반 폴리에스터인 LAHB가 심해 바닥에서도 활성 생분해와 완전한 광물화를 겪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이는 전통적인 PLA가 완전히 분해되지 않는 환경에서도 가능하다"라고 타구치 교수는 설명합니다.
심해 바닥에 플라스틱 필름 샘플의 배치 및 회수. (A) 그룹화된 샘플 용기는 BHT 사이트(수심: 853m)의 심해 바닥에 배치됐음. (B) 용기는 인간 탑승형 차량 Shinkai 6500에 의해 회수되었음. (C) 구멍이 뚫린 원통형 용기를 열어 폴리에틸렌 메쉬에 담긴 플라스틱 필름 샘플을 회수했음. (D) 플라스틱 필름은 선내 실험실에서 분리. (사진=Polymer Degradation and Stability)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심해 미생물의 '팀플레이'
과연 LAHB를 누가, 어떻게 분해했을까. 연구진은 플라스틱 표면에 붙은 미생물 군집('플라스티스피어')을 분석해 정체를 밝혔습니다. 그 결과, 감마프로테오박테리아 계열의 Colwellia, Pseudoteredinibacter, Agarilytica, UBA7957 등이 LAHB 표면에 몰려 있었고, 이들이 고분자 분해효소(PHB depolymerase)를 활발히 분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효소들은 LAHB 고분자를 3HB-3HB 혹은 3HB-LA와 같은 다이머나 트라이머로 쪼개고, 이후 UBA7959 등 또 다른 미생물들이 이들을 다시 단량체로 분해하여 최종적으로 이산화탄소와 물 등으로 무기화하여, 생물학적으로 완전한 '분해-순환-재생'의 모델을 심해에서 구현했습니다.
PLA의 한계와 LAHB의 가능성…"진짜 분해되는 플라스틱이 필요"
PLA(폴리락타이드)는 옥수수 전분 등 재생 가능한 자원에서 추출한 설탕으로 제조돼 바이오플라스틱으로 주목받았지만, 분해 조건이 까다롭고 해양 환경에서는 거의 분해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일부 기업은 PLA에 단백질 분해효소나 화학 첨가제를 더해 개선을 시도하고 있으나,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반면, LAHB는 미생물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산된 '생물합성 플라스틱'으로, 뛰어난 투명성, 기계적 강도, 열적 안정성 등 실용성을 갖춘 동시에 다양한 자연환경에서 실제 분해되는 장점을 입증했습니다.
"해양 플라스틱 문제 해결의 실마리 될 것"
현재 생분해 플라스틱은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의 0.3%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바다에서 실질적으로 분해되는 제품은 거의 없습니다. 심해는 플라스틱의 최종 도착지이자, 생분해 시험의 최종 관문입니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은 심해라는 가장 극한의 환경에서도 실제로 분해되는 플라스틱의 존재를 증명한 사례"라며 "바이오플라스틱이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서 해양 환경을 지키는 실질적 해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연구는 현재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가장 중요한 한계 중 하나인 해양 환경에서의 생분해성 부족 문제를 해결합니다. LAHB가 심해 조건에서도 분해되고 광물화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 연구는 전통적인 플라스틱의 안전한 대안을 위한 길을 제시하며 순환형 생물경제로의 전환을 지원합니다"라고 타구치 교수는 말합니다.
세계의 고민거리 중의 하나인 '바다 플라스틱 대란'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은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친환경'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바다를 오염시키는 플라스틱이 많은 현실을 고려할 때, 진정한 친환경 플라스틱은 '실험실'이 아니라 '심해'와 같은 현장에서 증명돼야 한다는 것을 일본의 연구는 보여줍니다. 문제의식의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는 강력한 도전을 플라스틱 정책 당국과 관련 산업에 던진 것입니다.
심해 바닥에서 7개월 및 13개월 동안 LAHB 필름의 분해. (A) BHT 사이트의 심해 바닥에 침지 전(0개월)과 침지 후(7개월 및 13개월)의 LAHB, PHBV, PLA 필름의 거시적 표면 이미지. 필름은 메탄올과 증류수로 세척한 후 종이 타월로 닦았음. (B) 7개월 및 13개월간 심해 바닥에 침지한 후 각 필름의 무게 감소율. 오차 바는 표준 편차를 나타냄 (n = 5).(사진=Polymer Degradation and Stability)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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