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여성은 왜 더 오래 사는가"
독일 연구진, 진화가 남긴 수명 격차의 비밀 밝혀
유전·성 선택·양육 전략이 길고 짧게 만들어
2025-10-31 09:57:03 2025-10-31 14:15:51
포유류와 조류의 ALE 성별 차이. (사진=Science Advances)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남성은 일찍 죽는다.” 일상에서 종종 확인되는 사실이지만, 이것이 단순한 사회현상이 아니라 진화가 각인한 생물학적 법칙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가 주도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포유류 528종과 조류 648종 등 총 1176종의 자료를 분석해, 암컷 포유류는 수컷보다 평균 13% 오래 살지만, 새의 세계에선 수컷이 암컷보다 5% 오래 산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는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산다’는 인류의 보편적 현상이 단지 의료, 문화, 환경 때문이 아니라 유전적 구조와 짝짓기 전략, 부모 역할이라는 진화의 메커니즘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10월1일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습니다.
 
두 개의 X가 지켜주는 수명, 유전자의 비대칭
 
연구팀은 우선 ‘이형염색체 가설(heterogametic sex hypothesis)’에 주목했습니다. 생물 교과서에 나와 있듯이 포유류의 암컷은 두 개의 X 염색체(XX)를 가지지만, 수컷은 X와 Y 염색체(XY)를 지닙니다. X 염색체가 두 개면 하나에 돌연변이가 생겨도 다른 하나가 보완하지만, XY 수컷은 방패가 하나뿐이 셈입니다. 반면 새의 세계에서는 반대로 암컷이 이형염색체(ZW)를 가지며, 수컷은 ZZ입니다. 
 
결과적으로 포유류에서는 암컷이, 조류에서는 수컷이 평균적으로 더 오래 사는 ‘거울 대칭 구조’가 나타납니다.
 
논문의 제1저자인 요한나 스테르크(Johanna Stärk) 박사는 “염색체의 차이는 분명한 단서지만, 모든 종이 이 이론에 맞지는 않는다”라며 “맹금류나 일부 영장류에서는 암컷이 더 크고 더 오래 사는 등 예외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수컷이 짧게 산다”
 
이 연구에 따르면 유전만이 답이 아닙니다. 진화생물학의 고전 이론인 ‘성선택(sexual selection)’이 또 다른 열쇠입니다. 
 
짝짓기 경쟁이 치열한 종일수록 수컷은 화려한 깃털, 근육, 무기(뿔, 송곳니 등) 같은 ‘성적 과시 특성’을 진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는 생존의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연구진은 “일부일처(monogamy)가 아닌 일부다처(polygamy) 구조를 가진 종일수록 수컷의 사망률이 높았다”고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고릴라나 사자처럼 경쟁적 사회에서는 수컷이 일찍 죽는 반면, 펭귄·백조처럼 짝을 유지하며 양육을 분담하는 새에서는 수컷이 오히려 더 오래 삽니다. 
 
“수컷의 수명 단축은 짝짓기 경쟁이라는 생물학적 ‘리스크 투자’의 결과”라고 것이 논문의 교신저자인 덴마크 오덴세대학의 페르난도 콜체로(Fernando Colchero) 교수는 설명입니다. 
 
‘육아’의 진화학: 더 오래 살아야 자식이 산다
 
연구팀은 또 한 가지 결정적 요인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양육의 부담입니다. 포유류의 경우 암컷이 임신과 수유를 담당하고, 새끼를 돌보는 시간도 훨씬 깁니다. 이는 “더 오래 살아야 유전자를 남길 수 있다”는 자연선택의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인간 여성의 긴 평균수명 또한 이런 ‘모성 연장 전략’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실제로 장수 유전자 연구에서는 폐경 이후에도 손자녀를 돌보는 ‘조모 효과(grandmother effect)’가 여성의 생존 이점을 강화한다는 결과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습니다. 
 
동물원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남녀 수명 차이
 
연구진은 야생뿐 아니라 전 세계 동물원(주로 Species360 데이터베이스)의 개체 기록을 분석해 환경 요인도 비교했습니다. 맹수의 공격이나 질병, 기후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안전한 환경에서도 수컷과 암컷의 수명 차이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만 야생보다 격차는 줄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의료기술과 생활수준 향상으로 성별 수명차가 좁혀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현상과 닮은 꼴입니다. 
 
스테르크 박사는 “유전과 생태, 성 역할이 만든 수명 격차는 진화의 구조 속에 새겨져 있어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다”라며 “이 차이는 단순히 ‘운명’이 아니라 생명체의 생식전략과 생존전략의 타협점”이라고 말합니다.
 
인간 사회에도 남은 진화의 자취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성보다 약 5.4년 깁니다. 이 격차는 산업화 이후 의료 접근성과 생활환경이 개선되며 줄어들었지만, 어느 시대·문화권에서도 여성의 생존 우위는 뒤집힌 적이 없습니다.
 
이번 연구는 그 원인이 문화나 생활습관이 아닌, 수백만 년의 진화사에서 축적된 생물학적 흔적임을 보여준 셈이다.
 
이 논문은 단순한 성별 비교를 넘어 ‘수명의 진화적 토대’를 입체적으로 규명한 첫 대규모 비교 연구로 평가됩니다. 528종의 포유류와 648종의 조류를 대상으로 베이지안 생존모델(Bayesian survival trajectory analysis)을 적용, 성별 평균수명(ALE: Adult Life Expectancy)의 차이를 통계적으로 추정했습니다. 그 결과, 포유류의 평균 여성 우위는 12%, 조류의 남성 우위는 5%로 나타났으며, 일부 고등종에서는 그 차이가 20%를 넘었습니다.
 
“우리의 수명은 단지 의료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진화가 새긴 생물학적 균형의 결과”라고 연구팀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여성의 장수는 우연이 아니라, 유전·성선택·양육이 함께 빚은 생명의 전략입니다. 
 
DOI: 10.1126/sciadv.ady8433
 
분류학적 목 및 과별 ALE 성별 차이. (사진=Science Advances)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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