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미생물 세계, ‘물리적 확대’로 새롭게 보다
EMBL 연구진, 확장 현미경법으로 생명공학 지평 넓혀
2025-11-04 16:00:08 2025-11-04 16:26:32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 European Molecular Biology Laboratory) 연구진이 ‘확장 현미경법(Expansion Microscopy, ExM)’을 활용해 생명체 내부를 전례 없이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기술은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며, 세포 내 1μm(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미터)급 세계에 새로운 지도를 그려 넣고 있습니다. EMBL를 주축으로 한 국제 연구진은 초구조 확장 현미경법(U-ExM)을 활용하여 주요 계통에 걸쳐 배양된 200종 이상의 부유성 미생물 진핵생물(Microbial eukaryotes)에 대한 고해상도 체적 이미징을 수행한 결과를 지난 10월31일 세계적 과학저널 <셀(Cell)>에 게재했습니다. 
 
도쿄 환경 시료에서 채집한 섬모 진핵 미생물 라크리마리아(Lacrymaria)의 확장 현미경 이미지. 녹색으로 강조된 부분은 세포골격 섬유인 미세소관의 주요 단백질 구성 요소인 튜불린이다. 척도 막대는 5 마이크론을 나타낸다. (사진=Felix Mikus/EMBL)
 
“단순한 발상으로 혁신에 성공”
 
ExM은 이름 그대로 생물 샘플을 실제로 부풀려서 관찰하는 기법입니다. 조직이나 단세포 생물을 투명한 겔에 고정한 뒤, 물을 흡수시키면 최대 16배까지 크기를 ‘물리적으로’ 팽창시킵니다. 그 상태에서 기존 광학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전자현미경 수준의 해상도로 세포 소기관과 구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MBL의 가우탐 데이(Gautam Dey)는 “이 방법은 말도 안 될 것 같지만 실제로 작동한다. 그리고 전례 없는 질문을 던질 기회를 열어줬다”라고 말합니다. 
 
ExM은 특히 해양 미생물, 플랑크톤, 원생생물에서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실험실 배양이 어렵고, 유전체 분석만으로는 세포 구조를 파악하기 힘든 생명체들에게 ExM은 일종의 ‘고속 관문’을 마련해준 셈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스위스 제네바 대학의 해양 미생물학자 오마야 두딘(Omaya Dudin) 박사는 이 기법으로 해양 원생생물(Ichthyosporea) 내부 구조를 세계 최초로 확인했습니다. 이 세포벽을 뚫기 힘들어 그동안 시도조차 어려웠던 대상을 ‘부풀린 뒤 열린 통로’를 통해 항체 염색에 성공한 것입니다. 이 발견을 계기로 두 사람은 3년에 걸친 공동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지금은 지구 미생물의 ‘세포 구조 아틀라스’를 구축하는 글로벌 프로젝트(PlanExM)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특히 미세한 원생생물들에서 중심립(centriole)이나 미세소관(microtubule) 같은 세포 골격 요소들을 대량으로 비교한 최근 논문은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EMBL의 니콜로 반테를레(Niccolo Banterle) 그룹은 ExM을 기존 초고해상도 기법과 결합해 중심체의 ‘완벽에 가까운 대칭 구조’를 광학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광학 현미경으로 중심체의 나선형 배열을 본다는 건 과거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는 것이 반테를레의 설명입니다. 
 
제네바 대학 두딘 박사 연구팀이 확장 현미경으로 시각화한 다양한 미생물들의 이미지. (사진=Dudin Group/University of Geneva)
 
“생명나무 세포 구조, 대규모 비교 가능”
 
PlanExM 참여자들은 초미세 구조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생물 종들의 계통적 차이, 즉 ‘세포 진화’의 흔적을 데이터 기반으로 추적하고 있습니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EIPOD 펠로우 히랄 샤(Hiral Shah) 박사는 “전 세계에서 채취한 플랑크톤 수백 종을 분석했더니, 어떤 종은 중심체가 길쭉하게 진화했고, 또 다른 종은 세포 표면에 특수한 단백질을 배열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고 말합니다. 
 
ExM은 배양이 어려운 해양 조류, 규조류(diatoms)와 같이 자연환경 의존도가 높은 종에도 유용합니다. EMBL 바르셀로나 그룹은 냉동 시료 기반의 ‘극저온 확장 현미경(Cryo-ExM)’까지 개발해, 물 속에서 포획한 상태 그대로 세포 구조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EMBL의 플로라 빈센트(Flora Vincent)는 “플랑크톤(Plankton)은 지구 산소의 절반을 생산하는 존재다. 그들의 진짜 모습이 지금 처음으로 열리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ExM은 2015년 MIT 에드워드 보이든(Edward Boyden)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이후 겨우 10년밖에 되지 않은, 새로운 기법입니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 일본까지 ExM 기술 네트워크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내년엔 EMBL 주관 기술 워크숍이 열릴 예정입니다. 
 
“유전체 분석이 생물 다양성을 새로 열었다면, ExM은 ‘세포 구조의 지구 지도’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EMBL의 가우탐 데이(Gautam Dey)는 선언합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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