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연구팀이 바퀴벌레 개체수와 실내 알레르기 유발물질 및 내독소(endotoxin) 수준의 연관성을 밝혀내면서, 바퀴벌레 퇴치가 실내 환경 건강 개선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바퀴벌레가 알레르겐과 내독소 농도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Matt Bertone, NC State University)
10월24일 과학 저널 <알레르기 및 임상면역학 저널(The Journal of Allergy and Clinical Immunology: Global)>에 발표된 이번 연구는, 바퀴벌레 배설물이 주택 내 먼지 속 내독소의 주요 원천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바퀴벌레 개체수를 줄이면 알레르기 유발 물질과 내독소 수치가 유의미하게 줄어든다고 밝혔습니다.
내독소는 박테리아가 죽을 때 방출되는 세포 구성 성분입니다. 거의 모든 것을 먹는 잡식성인 바퀴벌레는 풍부하고 다양한 장내 미생물 군집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퀴벌레는 배설물을 통해 다량의 내독소를 배출합니다. 이번 연구팀은 가정 먼지에서 검출된 대량의 내독소가 바퀴벌레 배설물과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내독소·알레르기 물질, ‘고농도’
이 연구는 저소득층 거주지역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Raleigh)의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연구진은 바닥과 공기 중 먼지, HVAC(난방·환기 시스템) 필터 등에서 바퀴벌레 알레르겐과 내독소 농도를 측정하고, 바퀴벌레 개체수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바퀴벌레가 다수 서식 중인 집일수록 주요 알레르기 유발물질인 Bla g 2 수치가 높았고, 내독소 수준도 유의미하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내독소 대부분은 바퀴벌레 배설물에서 기인하며, 특히 암컷 바퀴벌레 한 마리당 내독소 배출량이 수컷의 두 배 이상이라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이 연구의 공동저자인 마다비 카쿠마누(Madhavi Kakumanu)는 부엌에서 내독소 수치가 가장 높게 나타난 점을 지적하며, “음식물이 풍부한 주방 주변에 바퀴벌레가 집중적으로 서식한다”고 말했습니다.
연구진은 실험에 참여한 일부 주택에 전문 방제작업을 실시했고, 나머지는 바퀴벌레를 그대로 방치해서 두 집단을 비교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방제작업 집단에서는 6개월 내 바퀴벌레는 ‘0마리’로 감소하면서 알레르겐 Bla g 2와 내독소 농도 역시 크게 낮아졌습니다. 반면에 방제를 하지 않은 집에서는 바퀴벌레 개체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알레르겐·내독소 수치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 연구의 교신저자인 코비 샬(Coby Schal) 교수는 “바퀴벌레 숫자가 조금 줄어드는 건 의미가 없다. 살아남은 개체가 그만큼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다”라며 방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연구진의 ‘저소득 도시 가정의 바퀴벌레 서식과 관련된 실내 알레르겐 및 내독소’ 연구 개념도. (사진=The Journal of Allergy and Clinical Immunology: Global)
“배설물이 천식 악화시킬 가능성”
이 연구는 내독소가 단순히 바닥 표면뿐 아니라 공기 중에서도 검출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흡입을 통한 호흡기 노출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코비 샬 교수는 “내독소는 호흡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아동 천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연구팀은 현재 마우스 모델을 활용해 바퀴벌레 알레르겐과 내독소가 천식 증상에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추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퀴벌레 없는 집이 건강한 집”이라는 말은 상식이지만, 이번 연구는 그 표현이 상당히 정확하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퀴벌레의 위험성은 병원균 운반과 전파입니다. 하지만 이 연구는 바퀴벌레의 존재가 주거 실내 공기질 악화와 천식 악화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미국 가정을 대상으로 한 과거 조사에서는 바퀴벌레가 있다고 스스로 보고한 가정에서 내독소 수치가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연관성은 저소득층 가정에 더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바퀴벌레 서식률이 높은 저소득층 가정일수록 아동 알레르기·천식 위험이 증대된다는 기존 연구와도 이어집니다.
논문의 공저자인 자카리 드브리스(Zachary C. DeVries) 교수는 “이 연구는 환경 취약 가정에 대한 주거 환경 개선과 해충 관리 지원이 단순 위생 수준을 넘어 건강 형평성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바퀴벌레를 불결의 상징으로만 여기던 우리의 인식을 바꿔 바퀴벌레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있어야겠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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