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전기차 화재, 곧 해결될까?
덴드라이트 제어, 고속충전 전해질 개발 핵심
포스텍와 카이스트 연구진도 두 과제에 집중
2025-11-06 16:02:30 2025-11-06 16:38:58
전기자동차(EV) 시장이 급팽창하는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문제가 바로 ‘배터리 화재’입니다. 전기차는 연료를 태우는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화재 확률 자체는 낮지만, 한 번 불이 나면 진압이 어렵고 연소 속도가 빨라 피해 규모가 큽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배터리 구조와 소재 혁신을 통해 이 ‘폭발 위험’을 구조적으로 억제할 가능성을 제시하는 연구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습니다. 과연 전기차 화재 문제, 곧 해결될 수 있을까요? 
 

지난 10월5일 수원시 권선구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뉴시스)
 
국가소방청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는 2018년 3건에서 2023년 72건으로 5년 새 약 24배 늘어났습니다. 지난해 8월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주차 중이던 전기차가 폭발해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93대가 그을리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불길은 설계상 통제된 공간에 머물지 않았고, 소방당국도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충전 또는 주행 중 단락으로 인해 배터리 내부에서 열폭주(thermal runaway)가 시작되면, 수 초 내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 사건 이후 일부에서는 지하 전기 충전시설을 아예 폐쇄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기차 화재의 대표적 원인으로 ‘덴드라이트(dendrite)’라는 리튬 금속 결정이 음극에서 바늘처럼 자라나 전극을 뚫고 쇼트를 일으키는 현상이 지목돼 왔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수진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화학과 교수팀은 중앙대 문장혁 교수팀과 공동으로, 리튬이 일정 방향으로 질서정연하게 쌓이도록 유도하는 전극 구조체를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즈(Advanced Materials)>에 10월13일 게재된 이 연구는 이른바 ‘자동주차형 리튬 전극’입니다.
 
연구팀은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원리를 활용해, 전극 내부에 ‘구불구불하지 않은 곧은 통로’를 만들었고, 하부로 갈수록 리튬이 더 잘 달라붙도록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 리튬이 ‘밑에서 위로’ 차곡차곡 쌓이는 ‘상향식(bottom-up) 증착’이 구현됐고, 덴드라이트의 발생이 원천 차단됐습니다. 이 기술은 고에너지 밀도(398.1Wh/kg, 1516.8Wh/L)도 달성했고, 시장 주류인 NCM811과 LFP 양극재와의 실용 연계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했습니다. 박수진 교수는 “전극 내부의 길과 방향을 설계하는 전략이 리튬금속전지 상용화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리튬메탈전지 기술 관련 인포그래픽. (사진=KAIST)
 
“액체전해질로 덴드라이트 억제”
 
카이스트 변혜령 교수팀은 4일 서울대와 공동으로 실온에서도 빠르게 작동하는 새로운 유기 고체 전해질을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공유결합유기골격(COF) 소재를 기반으로 한 이 전해질은 리튬 이온 이동성을 기존 대비 100배 이상 향상시켰습니다. 두께 20μm의 초박막 구조 덕분에 리튬 금속과 안정적으로 결합하며, 300회 충·방전 후에도 초기 용량의 95%를 유지했습니다.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즈(Advanced Energy Materials)>에 10월5일 게재된 이 연구는 리튬메탈 전지의 화재 위험과 부피·무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상용화 가능성을 제시한 것입니다.
  
해외에서는 고체전해질 기반 전고체 배터리, 열폭주 차단 기술, 이상징후 감지 알고리즘 등 다양한 접근이 진행 중입니다. 미국 텍사스주립대 연구팀은 지르코니아 기반 세라믹 전해질로 덴드라이트의 관통 속도를 절반으로 줄였고, 일본 도요타는 2027년 전고체 전지를 탑재한 양산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전고체 전지는 공정 비용과 생산성, 내구성 문제로 당장 대량 양산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액체 전해질 기반 혁신’과 ‘고체 기반 전환’이 공존하며 경쟁하는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하주차장·충전소 안전기준 바꿔야”
  
전문가들은 “전기차 화재 문제는 기술만으로 풀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지하주차장 이용률이 높은 환경에서는 배터리 화재가 한 번 일어나면, 밀폐 공간에서 연기·열기가 확산되고, 차량 간 2차 화재로 이어질 위험이 큽니다. 국내 아파트의 충전시설 대부분이 소방 기준에 필요조건은 갖추고 있으나, 전기차 화재 특성(연기 독성·재발화·폭발 압력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덴드라이트 억제 기술, 리튬금속전지 고속충전 전해질, 전고체 전지 개발 등이 모두 진전되고 있는 만큼, 전기차 배터리 화재 문제는 머지 않은 장래에 해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도로 위 전기차와 지하주차장, 공공충전소까지 고려한 ‘전체 시스템 안전’이 갖춰져야만 진정으로 전기차 안전이 확보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완전히 확보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현재는 전기차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한 기술 혁신과 정책 환경이 숨가쁘게 진화 중이라는 것이 적절한 표현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