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인공지능(AI) 전환이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각 기업이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정작 산업 현장은 자금·인재·효과와 관련해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기업 규모별 맞춤형 지원과 실증 모범 사례 등 기업의 AI 전환을 도울 정책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 5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로보월드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가상 용접 작업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504개 제조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의 AI 전환 실태와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응답 기업의 82.3%가 ‘AI를 경영에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대기업(49.2%) 보다 중소기업(4.2%)의 활용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I 투자 비용에 대한 부담 수준을 묻는 말에는 기업 73.6%가 ‘부담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부담 호소 비율도 대기업(57.1%)보다 중소기업(79.7%)이 높았습니다.
대구의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생산공정만 해도 AI로 전환하려면 데이터 축적을 위한 라벨·센서 부착, CCTV 설치, 데이터 정제뿐 아니라 이를 기획하고 활용하는 비용, 로봇 운영을 위한 맞춤형 솔루션 구축, 관련 인력 투입 등 기존에 생각지 못한 자금이 들어가는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AI 전환 수요가 늘면서 ‘인재 구하기’도 더욱 어려워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I 활용을 위한 전문 인력이 있는지’를 묻자 응답 기업의 80.7%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AI 인력을 어떻게 충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기업의 82.1%가 ‘충원하고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내부 직원 교육을 통해 전문 인력으로 전환하는 기업(14.5%)이나 신규 채용한다는 기업(3.4%)도 적은 숫자에 불과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AI 인재는 해외 다른 국가와 비교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보고서는 “한국의 AI 인재는 2만1000명 수준으로 중국(41만1000명), 인도(19만5000명), 미국(12만명)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치”라며 “절대적 숫자도 적은데 그나마 있는 인재조차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인간중심AI연구소(HAI) 조사를 보면 한국은 AI 인재 ‘순이동’(Net Flows)이 -0.36으로 인재 순유출국에 해당합니다.
기업들의 AI 효과에 대한 확신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I 전환이 성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는지’를 묻는 말에 응답 기업의 60.6%는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답해 ‘효과가 클 것’(39.4%)이라는 전망보다 많았습니다. 대한상의는 “AI 전환에 적지 않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제조업 특성상 투자 대비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대한상의는 AI 전환을 통해 기업 성장을 위해서는 ‘역량에 맞는 맞춤형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클라우드 인프라 지원 등 지원책에 대한 용처를 제한하기 보다 기업이 자체 프로젝트에 맞게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주장입니다. 또한 AI 도입률이 낮은 기업에게 단순 자금 지원, 장비 보급보다는 AI 도입 단계에 따른 실효성 있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많은 제조 기업들이 AI의 성능을 체감할 수 있도록 실증 모범 사례가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지금은 AI에 대한 미래 조감도를 정교하게 만드는 데 주력하기 보다는 데이터 축적과 활용, 인재 영입 등에 뛰어들어야 하는 시점”이라며 “강력한 지원, 파격적 규제 혁신을 담은 선택과 집중의 메가 샌드박스라는 실행 전략이 맞물려 돌아가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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