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아들이) 보안대에서 죽어서 온 거야. 정부가 안 죽였으면 돈을 왜 줘."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한 노모의 울음 섞인 목소리. 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보안부대에서 고문을 당하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던 고 김용권씨의 어머니입니다. 지난 2024년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군대판 박종철 사건'으로 불리는 김용권 의문사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피해 인정)을 인정했습니다.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와 박찬대 민주당 의원실은 19일 오후 국회에서 '강제징집·프락치 강요 공작 진실규명 촉구를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했습니다.
권혁영 서울대 강제징집피해자모임 공동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강제징집·프락치 강요 공작 진실규명 촉구를 위한 국회심포지엄'에서 피해자 현황 등에 대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김성은 기자)
수천명 중 400여명만 진실규명…'빙산의 일각'
2019년 12월 설립된 위원회는 군부독재 시절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프락치 공작 강요를 당한 피해자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국가가 자행한 일의 실체와 책임자 규명, 국가의 사과, 피해자 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위원회의 김형보 상임위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이 학생운동 세력을 와해시키기 위해 저지른 불법 강제징집과 프락치 강요 공작에 대해 최초로 학술적인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며 "진실은 무엇인지, 반인륜적인 책임자와 실행자는 누구인지 우리는 아직도 진상을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피해자가 겪은 피해 사실과 후유증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을 세우는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1965년 한·일 회담 반대 시위에서 최초로 강제징집이 발생한 이후 60년, 전두환이 대규모 불법 강제징집과 프락치 강요 공작을 저지른 지 40여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날 강제징집 피해자 장희수·장중수씨의 어머니 김경자씨가 장중수씨와 함께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 고 윤경현 대위 어머니 이실로암씨도 자리했습니다.
권혁영 서울대 강제징집피해자모임 공동대표는 경과보고에서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등 피해 규모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며 "진실규명 신청자 총 482명 중 일부만 결정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강제징집 대상은 3685명(1965~1992년), 녹화공작 1192명(1982~1985년), 선도공작 1477명(1986~1989년)으로 집계됩니다. 2기 진실화해위에서 확인한 1970~1980년대 강제징집, 녹화·선도 공작 피해자는 2921명에 불과합니다. 과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1기에서 보안사 대공처 5과장(심사과) 대령 서의남이 피해자를 '5000명 이상'으로 증언했던 터라 더 많은 이들이 피해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강제징집·프락치 강요 공작 진실규명 촉구를 위한 국회심포지엄'에 참석한 강제징집 피해자 장중수씨(왼쪽)와 그의 어머니 김경자씨. 김경자씨의 첫째 아들이자 장중수씨의 형인 장희수씨도 강제징집 피해자이다. (사진=김성은 기자)
진실규명·피해회복 '요원'…"특별법 제정 필요"
아울러 독재정권의 의사결정 구조와 기구·가해자 명단 파악, 조사중지 의문사에 대한 진실규명 등의 전모를 밝히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실정입니다.
이지은 2기 진실화해위 조사관은 "3기 진실화해위에서는 개별 신청인의 진실규명 여부를 판단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권조사를 통해 피해자 전체에 대한 진실규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공작 시행 과정, 인권침해 발생 등에 대한 조사 범위와 시기 확장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이에 위원회는 특별법 제정을 통한 진상규명과 피해 회복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별법에는 피해 규모 산정 등을 위한 진상규명을 비롯해 직접 가해자인 해당 부처의 공식 사과, 피해자에 대한 국가 배상 및 지원 수립,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 의료 접근권 보장,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이 담길 예정입니다.
국회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한 박찬대 민주당 의원은 "(강제징집 피해) 목소리를 단순 증언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책임으로 이겨내야 한다"며 "진실은 듣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입법과 제도로 완성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제징집을 경험한 이용선 민주당 의원도 행사에 참석해 "진실화해위가 직권조사를 할 수 있는 조사기구 구성, 국가의 사과, 배·보상을 권고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가능해지려면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공감했습니다. 이어 "현재 확인된 피해자들은 빙산의 일각이고, 전체 규모로 보면 10%로 안되는 수준"이라며 "정부와 국회의 협의로 특별법을 제정해 진상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절차로 들어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와 민주당 박찬대·이용선 의원, 강제징집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강제징집·프락치 강요 공작 진실규명 촉구를 위한 국회심포지엄'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성은 기자)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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