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11·22 간첩단 사건, 50년 미뤄진 진상규명
2025-11-21 06:00:00 2025-11-21 06:00:00
1975년 11월22일자 신문에는 엄청난 간첩 사건 기사가 등장했다. 국내 대학에 다니는 재일동포 유학생 21명을 간첩으로 체포했다는 중앙정보부의 수사 발표였다. 50년이 지난 2025년 11월21일에는 당시 간첩으로 발표되었던 인사들이 국내 인권 단체와 함께 서울 시내 복판에 있는 향린교회에 모인다. 분단과 폭력의 시대를 넘어 평화와 인권의 시대로’를 제목으로 내걸고 ‘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하는 치유 한마당’이라는 대화 모임이 예정되어 있다. 다음날인 11월22일에는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피해자를 위로하는 공연과 문화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50년이라는 세월은 간첩을 양심수로 바꾸어놓았다. 물론 이러한 행사 자체가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장기간 복역한 피해자들은 2010년대 이후에 대부분 재심을 거쳐 무죄가 확정되었으며 법정에서 판사는 국가를 대신해 사과했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국가는 민사 배상도 실시했다. 표면적으로는 박정희정권의 만행이 청산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세월은 회복이 불가능하며 청년들이 가졌던 인생 설계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 사건의 피해자 가운데도 박근혜정권 시절의 사법농단으로 국가 배상을 거부당한 사례가 있다. 이들은 장기간 복역하고 석방되어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일본 정부는 장기간 부재를 이유로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서 규정한 특별영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일반영주권만 허용하는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한국 여권을 갱신할 때마다 정보기관이 개입해 창구에서 귀찮은 일을 겪었다는 얘기도 드물지 않다. 일단 용공 혐의를 받았으면 무죄가 확정되어도 낙인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 
 
군사정권이 조작한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 중 아직 명백하게 진상이 규명된 사건은 소수에 불과하다.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의 전시물 모습. (사진=뉴시스)
 
군사정권 시절에 발생한 각종 재일동포 간첩단 피해자 가운데 재심을 거쳐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는 아직도 소수에 불과하다. 더욱 답답한 사실은 과거사 문제가 워낙 늦게 공론화되다 보니 재심을 추진하는 재일 한국 양심수 동우회가 찾으려 노력했는데도 연락이 닿지 않는 피해자가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피해의식 때문에 재심을 위한 변호사 상담 자체를 장기간 거부하는 사례도 있었다. 구속, 기소, 재판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수사 과정에서 고문으로 정신 이상 상태가 되어 일본으로 추방된 뒤 제대로 직업을 갖지 못하고 떠돌다가 사실상 아사한 사례도 있다. 이런 피해자는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것도 어렵다. 성적 피해를 당한 여성은 수치심으로 인권 단체의 사실 확인을 위한 접촉도 기피한다. 
 
국내 인권 단체, 민주 인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뜻을 모아 무고하게 고초를 겪은 재일동포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이벤트를 마련한 것은 좋은 일이다. 이는 산적한 과거사 청산 과제를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을 환기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걱정도 지울 수 없다. 혹시라도 재일동포와 관련된 과거사 청산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잔치라는 오해가 생기면 난감해진다. 11·22 사건을 기획하고 실행한 주모자의 정체와 의사결정 과정도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진정한 과거사 청산과 화해가 이뤄지려면 진상규명이 선결되어야 한다. 이제라도 사건의 진상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각종 정보수사기관 내부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를 공개하면 진실은 즉시 밝혀질 것이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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