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정권교체에도 한국 회계정책의 중심부에는 여전히 기득권 구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 시기, 이한상 현 한국회계기준원장과 금융당국 인사들이 주요 회계 이슈의 핵심 국면마다 제도와 판단이 기업에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다는 지적입니다. 여기에 차기 회계기준원장으로 한종수 이화여대 교수가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회계업계 안팎에서는 "과거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회계 투명성 제고’를 강조하며 회계기본법 제정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회계 현장에서는 기존 관성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17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이한상 원장은 주요 기업 회계 논란이 불거졌던 시점마다 금융당국 내 핵심 심의·판단 과정에 관여하며 제도와 해석의 연결 지점에 반복적으로 등장해 왔습니다. 윤석열정부 시기 회계기준원이 기업 회계 이슈의 '중간 경로'로 기능해 왔다는 문제 제기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기업 회계 논란의 시작과 현재…"유리한 해석의 반복"
이 원장을 둘러싼 논란의 출발점으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적 분식회계' 혐의를 심의한 금융위원회 감리위원회가 거론됩니다. 2018년 5월 해당 감리위원회 당시 이 원장은 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6년 8월 상장 직전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장으로 영입한 정석우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와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2년 말 불거진 삼성생명 일탈회계 논란 역시 주요 쟁점입니다. 회계업계에서는 금융당국 내부 논의 과정에서 일부 인사들의 발언이 감독 기조에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가 일탈회계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귀결됐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 이 원장이 '계약자 지분 조정을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의 견해를 피력했고, 이러한 논의 흐름이 일탈회계를 사실상 용인하는 판단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이 원장은 "특정 기업을 돕기 위해 판단에 관여한 사실은 없다"며 "계약자 지분 조정 문제는 회계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었고, 이를 검토하자는 취지였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회계 판단을 기업 편의와 연결시키는 해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차기 회계기준원장 인선 국면에서도 이 원장의 역할은 주목 대상입니다. 그동안 삼성생명 회계처리 방식을 두고 대립 구도가 형성된 것처럼 비쳐졌던 이 원장과 한 교수의 관계를 두고, 업계에서는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회계업계에서는 두 사람이 과거 회계기준원과 한국공인회계사회 활동을 통해 오랜 기간 깊이 교류해 온 사이라고 말합니다.
한 교수가 회계기준원장 후보 1위로 결정된 원장추천위원회 직후인 11일 열린 한국공인회계사회 행사에서, 이 원장과 한 교수가 나란히 앉아 덕담하는 장면이 목격됐다는 전언도 나옵니다.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파안대소하며 건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알려진 대립 구도와 달리 인선의 큰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고 귀띔했습니다.
이한상 제9대 한국회계기준원장(왼쪽·고려대 경영대학 교수)과 차기 회계기준원장 후보 1위로 거론되는 한종수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 (사진=고려대, 한국회계학회)
회계 판단에서 제도·인선까지…구조적 논란
기업 회계 판단을 둘러싼 논란은 기업에 유리한 규제 기조로까지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한상 원장은 감사인 지정제와 관련한 제도 변화 국면에서도 비판의 중심에 섰습니다. 감사인 지정제는 대기업과 회계법인 간 유착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윤석열정부 들어 '기업 부담 경감'과 '밸류업'을 명분으로 제도 손질이 본격화됐고 그 결과 지정유예 제도가 도입되며 실효성이 약화됐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당시 이한상 원장이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 정책 라인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은 예외를 둘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고, 그 흐름이 실제 제도 집행으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업계에 퍼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김건희 스승'이기도 한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지정감사 완화 논리를 공개적으로 뒷받침해 온 인물"이라며 "지정유예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회계·감사 지배구조 우수기업 평가위원회' 초대 평가위원장을 맡았다는 점에서 업계의 시선이 집중됐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최 교수의 위원장 취임 이후 KB금융, KT&G, 현대차증권 등 주요 기업들이 주기적 지정감사 유예를 받았습니다. 현재 최 교수는 금융위원회 산하 회계제도심의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감사인 지정제 완화나 감리위원회 구성과 같은 정책 결정은 금융위원회와 관계 기관 논의를 거쳐 이뤄진 것으로, 개인이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감리위원회 구성 변화도 흘려봐서는 안 됩니다. 회계업계에서는 윤석열정부 이후 금융위원회 감리위원회 위원이 교체될 때마다 신규 위원 선임 과정에서 최 교수의 제자나 후배로 분류되는 서울대 석·박사 출신 인사들이 다수 임명돼 왔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한상 원장은 감리위원 경력과 정책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학계 인사들이 감독 판단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흐름을 내부에서 연결해 온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이사직을 둘러싼 논란도 이한상 원장을 중심으로 맞물립니다.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전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 재단 이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회계업계에서는 이 원장이 인선 과정에 일정 부분 관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김병환 당시 금융위원장이 추천서를 작성했고, 이윤수 전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이 실무를 맡았으며, 이 원장 역시 지원 서류 작성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언급됩니다.
회계기준원 내부 인사 역시 논란의 대상입니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 원장이 삼일회계법인 출신 인사를 상임위원으로 전격 영입한 이후, 삼성 관련 회계 사안을 두고 내부에서 이해상충 우려와 갈등이 적지 않게 제기됐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통상 상임위원은 내부 승진 인사가 많은데, 외부 대형 회계법인 출신이 핵심 보직에 들어오면서 '기업·회계법인 네트워크에 제도적 공간을 열어준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내부에서 나왔다"고도 했습니다.
차기 회계기준원장 인선 앞두고 제기되는 '연속성' 논란
이한상 원장은 2018년 금융위원회 감리위원회 활동을 거쳐 2021년 윤석열 캠프에 합류해 기획 업무 등을 수행했습니다. 2022년 3월에는 윤석열정부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2023년 3월 회계기준원장에 선임됐습니다.
업계에서는 한종수 교수가 차기 원장으로 선임될 경우, 이한상 원장 체제에서 형성된 삼성 회계 인맥과 윤석열정부 시기 정책·감독 라인이 상당 부분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습니다. 한 교수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국제회계기준(IFRS) 해석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이 기간 한 차례 연임했습니다. 2023년부터는 포스코인터내셔녈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2023~2024년 제42대 한국회계학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올해 1월부터는 제3대 한국내부통제학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종수 교수는 최초 통화에서 추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으나, 이후 추가 연락 시도에는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