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언 1. 거대한 전환의 시대와 정책금융의 책무
'세계와 한국' 사회를 아우르는 큰 이슈들을 정리해보면,
'기후위기'와 '인공지능(AI)'을 정점으로 △고령화 △저출산 △양극화 △사회갈등 심화 △팬데믹 위협 △탄소중립 이행 △미중 패권(달러·에너지·기술·자원·영토 등) 경쟁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제 블록화 △유엔(UN)·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협력 약화 △잦은 지역 전쟁 △미국 국가안보전략(NSS) △핵 확산 위협 △범용 인공지능(AGI)·반도체·로봇·우주·해양·바이오·양자·신소재·소형모듈원자로(SMR)·수소·태양광·이차전지·방위산업·사이버보안 등 첨단기술 개발 촉진 △블록체인·디파이(DeFi) 탈중앙화·코인 화폐 등 국경 없는 디지털 세계 가속화 등이 있습니다.
특별히 따로 떼어 강조해야 할 영역은 기후위기입니다. 그 여파는 폭염·한파·가뭄·홍수·산불 등 환경 위기와 먹거리 생산 불안정, 해수면 상승, 생태계 파괴, 물 부족, 기후난민 증가 등으로 매우 심각합니다.
이런 이슈들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적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처럼 전례 없는 구조적 변화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정책금융의 국가 주도적·선도적·인내자본적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가리켜 언필칭 '국정 과제'라고 부릅니다.
직언 2. 정책금융 체계의 한계와 전환 필요성
(왼쪽 일곱번째부터)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 이억원 금융위원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이 2025년 12월11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출범식에서 기념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책금융은 특정 정책 목적을 위해 특정 부문에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시스템입니다. 특정 부문은 분야별로는 중소벤처·주택·수출입·첨단기술 등으로, 계층별로는 소상공인·농민·서민 등으로 분류됩니다. 특정 정책 목적은 시장 및 금융신용 관계에 있어서 선도적·실패 보완적·안전판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각 분야 및 계층의 사업을 진흥·발전·지원·육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정책금융의 재원은 정부 출연금·부담금·보조금·채권 발행 등으로 충당·조달됩니다. 자금 공급 방법은 융자·보증·투자·보험·유동화 등이며, 공급은 기존 정책금융기관이 담당하거나 위탁 또는 부처 자체 집행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정책금융의 설립 목적, 운용사업, 재원 충당 등 근거법은 '1정책금융 1법' 체계로 규정돼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이러한 일반론을 넘어, 국정 과제의 영역은 과거와 달리 규모가 커지고 속도는 가파르게 빨라졌으며 범위 또한 글로벌하게 확장됐습니다. 따라서, 가용 재정 예산·법정기금·법정공제회·특별회계 등 정책금융의 범위 재정립 및 공공자본의 개념 대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5년간 150조원이 운용되는 국민성장펀드의 절반 규모인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원을 비롯해 67개 기금의 연간 운용 규모 1000조원, 55개 법정공제회 자산 160조원, 에너지자원개발특별회계 63조원과 환경개선특별회계 71조원 등도 여기에 포함돼야 합니다.
더불어 특기 사항으로 '기금은 함부로 빼 쓰지 말자'는 구호가 전가의 보도처럼 반복되고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 시절 기금을 '안전한 은행 예금'에만 두려고 고집하던 관료들을 '주식 및 대체 투자'로 전환시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67개 기금 운용 금액 1000조원 중 여유자금의 금융기관 예치금이 300조원이나 됩니다. 일례로 재경부 소관으로 신용보증기금에 위탁한 산업기반신용보증기금은 운용 금액 7700억원 중 여유자금 금융기관 예치금이 무려 7000억원에 달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와 배경이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이 제기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금융 범위 재정립과 공공자본 확장·통합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직언 3. 대전환 담론, 디테일은 어디에
2025년 8월13일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를 시작으로, 8월22일 관계부처 합동의 이재명 정부 경제성장 전략 발표, 9월16일 대한민국 정부 명의의 123대 국정 과제 발표, 9월19일 금융위원회의 생산적 금융 및 12월16일 관계부처 합동의 국민성장펀드·15대 초혁신경제 추진 체계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2026년에도 대통령은 1월1일 신년사, 1월8일 수석보좌관회의, 1월9일 대국민보고대회, 1월21일 신년 기자회견, 1월27일과 2월3일 국무회의 등에서 '대도약을 위한 경제성장전략 5대 대전환'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담론의 대전환에 대한 주목은 초지일관 유지돼 왔고, 그 내용 또한 대단히 타당합니다. 그런데 개별 정책이 담론과 엇박자를 내는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촘촘하고 섬세한 예산이 어떻게 설계되고 집행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자료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국민성장펀드 150조원이 만병통치약처럼 제시되고 있지만, 조 단위로 제시되는 숫자들은 '희망 고문'에 딱 좋은 수사일 뿐입니다.
또 금융위원회 소관 정책금융기관협의회가 발표한 2026년 정책금융 공급액 252조원 역시 실제 신규 공급금액이 몇 퍼센트인지, 어느 정도를 차지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상당 부분이 1년 단위로 롤오버되는 여신이 절대 비중을 차지할 가능성이 큰데도, 마치 신규로 공급되는 자금인 양 착각하게끔 재주를 부리는 홍보 방식은 국민과 기업을 상대로 '뻥튀기 속임수'를 쓰는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이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 삶의 실질적 개선이 국정의 제1원칙'이라고 자주 강조하는 것과 비교할 때 대통령 방침과도 결이 맞지 않는 지점입니다.
결국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은데 정책 담론만 앞서가는, 이른바 '딴 동네 이야기'처럼 들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국민의 관심은 거창한 수사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과 연결된 정책자금이 실제로 어떻게 손가락 끝에 닿는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담론에 걸맞은 구체적 예산과 공급기관을 명확히 제시해 정책금융에 대한 국민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자는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직언 4. 창업국가 대전환, 정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지난해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에서 '
법정기금의 5~10%를 의무적으로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법안을 만들자'는 캠페인(링크)'을 추동했습니다. 수많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고, 다수의 국회의원이 법안 발의까지 했습니다. 민주당의 박정 의원을 필두로 유동수·윤준병 의원은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김태년 의원도 국가재정법이 재경위 소관 법률이라며 책임 발의를 약속했으나 수개월째 검토만 이어질 뿐 아직 발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슈의 중심에 있을 때는 너도나도 관심이 집중됐다가 시간이 지나자 '풍선에 바람 빠지듯' 동력이 빠지는 모습입니다.
한편 지난해 12월30일 개정된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제71조와 시행령 제46조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기금관리 주체에게 벤처투자를 요청할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는 내용과 '공적자금관리기금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44개 기금의 운용자금 중 10% 이내의 자금'을 활용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국가재정법 개정이 차일피일 지연되더라도 이미 중기부 장관에게는 일정한 권한이 주어져 있는 셈인데, 이러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사문화되고 있다는 점은 담론-정책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벤처스타트업을 논하면서 모태펀드와 벤처캐피탈(VC)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모태펀드의 총투자 규모는 약 37조원이고, 올해 투자금액은 약 2조5000억원으로 신규 1조6000억원, 회수 9000억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전년도 투자금액은 약 2조2000억원으로 신규 1조원, 추경 5000억원, 회수 7000억원 수준이었습니다. 전년 대비 약 16% 증가한 수치지만 '취업국가에서 창업국가로의 대전환'이라는 기조를 감안하면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 등 3개 부처만 제한적으로 출자하고, 다수 부처는 형식적 참여에 머무는 구조 역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현재 350개가 넘는 세칭 VC, 창업투자회사들은 투자 자금이 많이 늘어나 숨통이 트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빈익빈 부익부 심화, 상환전환우선주(RCPS) 중심 투자 관행, 신규 발굴보다 후속 투자 쏠림, 중소벤처기업·스타트업(중벤스)에만 불리한 계약 구조 등 여러 누적된 문제도 들여다봐야 할 것입니다.
한국 VC는 투자부터 회수까지 길어야 7년 정도를 내다보는 투자를 하기 때문에 인내자본이라기보다는 단기 회수 중심의 투자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벤처·스타트업에 장기 투자하는 인내자본으로서 정책금융은 모태펀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현재 정책의 최종 수요자인 중벤스는 여전히 자금 부족을 호소하고 있고, 자금을 중개하는 주류 VC들을 '상전'처럼 모시는 등 협상력에서 밀리는 구조라고 합니다.
직언 5. 미래를 위한 정책금융 재설계 9대 과제
위와 같은 경험과 분석을 바탕으로 몇 가지 문제의식과 '확장형 정책금융'의 대안을 모색해봅니다.
첫째, 통합적 운용이 핵심입니다. 현재 정책금융은 실행력이 분절되고 정책수단 간 중복·누수·비효율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를 일원화된 상위 법규와 거버넌스에 기반한 플랫폼으로 묶어 공공자본 전체를 전략 목표에 맞게 조정·배분하는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기관 통합은 극심한 분쟁을 야기해 본말이 전도될 가능성이 큰 만큼 자제·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국가전략 목표는 산업·기술·에너지 전환, 글로벌 공급망 대응, 수출 전략산업 등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하므로 '기관별 기능보다는 목표 기반 배분'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특히 상당수 정책금융기관은 근거법상 설립 목적과 주력 사업이 동떨어져 있거나 관계없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이것부터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성과 측정 기준을 대출잔액·수익률·부실률 등 기존 금융 지표에서 벗어나 핵심성과지표(KPI)를 중심으로 정책목표 달성도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기술혁신·산업전환·탄소감축 등 국가전략 목표와의 정합성을 기해야 합니다.
넷째, 대출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출자·리스크 분담·복합금융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며, 산업별·기술별·기업 생애주기별 금융수요에 부합하는 맞춤형 정책금융 패키지가 필요합니다.
다섯째, 국내 자금 공급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기술·공급망·전략자산 확보 등을 위한 해외 투자형 정책금융으로의 확장도 요구됩니다.
여섯째, 정책 과제는 공급자 중심 구조가 아니라 수요자 중심의 정책목표에 기반하여 설계되어야 합니다. 현장 집행 과정에서는 여전히 공급자, 그것도 시혜적 관점으로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일곱째, 이재명정부 출범 8개월이 경과된 시점에서 정책금융 전반을 평가해 보면 대선 공약을 경제성장전략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담론 전환은 비교적 잘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를 현장 정책과 디테일한 집행에 접목하는 과정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현상'이나 '태산명동 서일필'과 같은 모습이 반복되고 있고, 결과 역시 과장된 홍보로 포장되는 흐름이 계속될까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합니다.
여덟째, 확장형 정책금융 체계 구축은 단순한 제도 조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경로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가 핵심 전략 과제입니다.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 시절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최초로 도입해 재정 운용의 중요한 기틀을 마련했듯이, 정책 환경 변화에 맞는 정책금융과 공공자본의 설계를 다시 해야 합니다. 나아가 그 방향은 국내외 민간자본과의 효과적인 결합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아홉째, 올해부터는 평가 대상 정책금융기관을 국책은행을 비롯한 기존 평가 대상 기관에 더해 67개 기금관리기관, 55개 공제회(공제조합), 2개 특별회계 관리기관까지 확대하겠습니다.
정재호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장. (사진=뉴스토마토)
정재호 뉴스토마토 고문·K-정책금융연구소 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