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1호는 '심리불속행'…헌재, 대법 관행에 칼 빼든 이유는?
대법, '형사 무죄' 대 '행정 패소' 엇갈린 사안에서도 '심리 없이 기각'
'재판 받을 권리' 침해 논란…헌재 결정 따라 심리불속행 줄 가능성도
2026-05-04 17:53:20 2026-05-05 15:42:28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 1호' 사건으로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판결을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10초 재판'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심리불속행 제도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됩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사진=뉴시스)
 
헌재는 지난달 28일 지정재판부 평의를 거쳐 '녹십자 입찰담합 과징금 처분 취소소송' 관련 대법원 확정판결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했습니다. 이어 다음날인 29일 대법원에 심판 회부 사실을 통지했고, 그로부터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재판소원 제도 시행 이후 본안 심리에 들어간 첫 사례입니다. 
 
재판소원은 법원의 확정된 판결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헌재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헌재 결정에 반하거나, 헌법·법률이 정한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헌법·법률을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재판소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시행 이후 한 달여 만에 500건이 넘는 사건이 접수됐지만, 본격적인 심리를 받게 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제도입니다. 심리불속행이란, 대법원이 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사건 가운데 2심 판결엔 ‘법리적 잘못이 없다’고 판단, 별도의 심리 절차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입니다. 대법원으로 올라간 민사·가사·행정 사건의 70% 이상이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됩니다. 
 
문제는 이럴 경우 판결 이유를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민사소송법 제208조(판결서의 기재사항 등) 등에 따르면, 원칙적으로는 법관은 판결 이유를 기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상고심법) 등엔 심리불속행 판결 땐 법관이 별도의 이유를 기재하지 않는 게 허용됩니다. 다만 이럴 경우 대법원까지 올라간 소송 당사자는 ‘내가 왜 패소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겁니다. 
 
이번에 재판소원 본안 심사에 오른 1호 사건인 녹십자 취소소송 역시 이런 논란이 집약된 사례로 꼽힙니다. 앞서 제약사 녹십자는 2017년~2019년 백신 입찰을 담합한 혐의로 과징금 20억원 부과와 함께 2020년 검찰에 고발됐습니다. 이후 녹십자는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고, 검찰의 기소로 형사소송도 동시에 진행됐습니다. 
 
법원의 판결은 엇갈렸습니다. 녹십자는 형사소송에선 무죄가 확정됐지만, 과징금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에서는 패소했습니다. 녹십자는 형사소송과 행정소송에서 상반된 해석이 나왔다며 이에 불복해 상고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지난 2월 이 사건에 대해 심리불속행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에 녹십자는 "행정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심리불속행으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 헌법소원 청구에 나선 겁니다.
 
지난 3월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심판 청구 안내문이 놓여 있다.
 
이번 재판소원에선 '심리불속행 제외' 사유가 존재함에도 심리불속행으로 결정이 난 사건들의 기본권 침해에 관해 다룰 전망입니다. 녹십자를 대리한 법무법인 율촌 역시 이 지점을 지적했습니다. 율촌은 “상고심법 제4조 제1항 각호엔 심리불속행 제외 사유가 존재한다. 아무 때나 심리불속행 판결을 내릴 수 없다"면서 "대법원이 행정재판의 법률상 쟁점에 대해 실질적 심리를 하지 않은 채 심리불속행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했습니다. 
 
심리불속행 제도는 그간 여러 차례 위헌 논란에 휩싸였지만, 헌재는 합헌 판단을 내려왔습니다. 재판청구권은 모든 사건에서 상고심 판단을 받을 권리까지 보장하는 게 아니고, 상고심은 개별 사건 구제보다 법령 해석의 통일 기능에 무게를 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다만 내부에서도 이견은 있었습니다. 일부 재판관들은 심리불속행 사건에서도 이유 기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법원이 당사자의 요청을 인지하고 타당하게 판단했다는 것이 충분히 설시되도록 판결에 이유를 기재할 의무가 부과되고 이로 인해 청문청구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표현된다”고 판시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재판소원을 계기로 대법원의 '이유 없는 기각' 관행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박용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 소장은 "형사와 행정재판은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지만, 그럴수록 대법원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설명했어야 한다"며 "아무런 이유 없이 기각한 점은 문제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도 "그간 상고심법에 정하지 않은 규정도 심리불속행된 경우가 많았다. 헌재는 '심리불속행 대상이 아닌데도 그렇게 결정하는 경우엔 헌재가 통제하겠다'라는 의미"라며 "헌재가 심리불속행이 가능한 경우와 불가능한 경우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정할 것 같다. 이번 사건에 대한 헌재의 판단에 따라 앞으로는 심리불속행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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