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농협중앙회장 직선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농협법 개정안) 처리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당초 6·3 지방선거 전에 농협 개혁 법안 처리를 공언했는데요. 지역 표심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농협 조합장들의 반대가 커지자 여당 내부에서도 속도 조절을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농협 안팎의 반대와 각종 로비에 막혀 개혁 작업이 좌초된 사례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전 법안 처리 난망
13일 정치권 및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지난 12일 농협법 개정안 관련 입법 공청회와 법안심사소위원회, 전체회의를 잇달아 개최했습니다. 농협법 공청회는 당초 지난 7일 개최 예정이었으나 참석자 조율 등을 두고 여야 간 이견으로 한 차례 미뤄진 바 있습니다. 이날 법안소위 문턱을 넘으면 지방선거 전 농협법 개정안 처리가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별다른 진척 없이 끝났습니다.
여야 간 이견으로 법안 처리가 불투명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서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농협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기는 부담스럽다는 기류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농해수위 의원실 관계자는 "민주당 등 범여권만으로도 의결정족수는 충족한다"면서 "(민주당이) 강행 처리하려면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실제 이날 농해수위 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농협 측 참석 제한 등을 문제 삼으며 회의에 불참했지만 민주당과 진보당 의원들만으로도 의결 자체는 가능했었습니다. 농해수위 위원은 총 17명으로 민주당 의원 9명, 국민의힘 의원 7명, 진보당 의원 1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민주당 내에서도 지방선거 앞두고 부담스럽다, 하반기로 넘기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지역 표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농협 조합장들의 반대가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전국 1000여명에 달하는 지역 농협 조합장들은 단순한 조직 책임자를 넘어 지역 농민 사회와 영농 조직을 연결하는 핵심축으로 평가됩니다.
농해수위 의원실 한 관계자는 "조합장은 단순 조직 책임자가 아니라 조합원과 가족, 지역 농민단체와 영농회 등으로 연결된 지역 여론의 중심에 있어 선거철마다 조합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 농민 조직이 선거 지지 표 결집이나 후보자 평가 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지역 농협 조합장들의 조직력과 표심 영향력이 실제 부담으로 작용해 농협법 개정안 통과를 미룬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부. (사진=뉴시스)
지역 조합장들 반대 의견 '눈치'
일부 지역 조합장들은 협동조합 자율성 훼손을 들어 농협 개혁 법안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조합장들은 최근 드러난 농협 내부 문제의 심각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개혁 추진 과정에서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농협법 개정안에 포함된 감사위원회 외부 분리와 위원장 대통령 임명, 농림축산식품부의 감독권 확대 등에 대해 정부가 인사와 감사에 직접 개입하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협동조합의 자율성과 독립 원칙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당 내부에서도 농협 개혁의 방법론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농협법 개정안은 농협중앙회장 직선제 도입과 외부 감사기구 신설을 핵심으로 합니다. 중앙회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조합원 통제를 강화해 농협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입니다.
윤 의원안은 전 조합원이 중앙회장을 직접 뽑는 직선제를 도입하고 범농협 통합 감사기구인 '농협감사위원회'를 별도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농협 내부 견제 기능을 강화하고 외부 감시를 확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반면 문금주 민주당 의원안은 직선제 대신 일부 대의원과 조합장 중심의 선거인단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직선제 수위를 낮춘 절충안 성격입니다. 반면 전종덕 진보당 의원안은 윤 의원 안처럼 직선제를 유지하면서 외부 준법감시인 임명 등을 추가했습니다.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 안은 중앙회장 선거제도 개편 내용은 제외한 채 독립이사 도입 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외부 전문가 비중을 늘려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임미애 민주당 의원안은 중앙회장 선거 방식보다 농협 조직 구조 자체 개편에 무게를 뒀습니다. 현재 거대한 중앙회 조직을 시·도 단위 연합회 중심 체계로 재편하는 방안을 담았습니다.
'흐지부지될라' 21대 국회 데자뷔
지방선거를 앞두고 농협 개혁 작업이 지체되면서 과거 실패 사례를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 등을 둘러싸고 농협 안팎과 정치권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농협법 개정안 처리가 물 건너간 바 있습니다.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의 경우 지역 조합장들의 반대가 극심해 당시 정치권에서는 건드리기 부담스럽다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22대 국회가 출범하고 정권이 바뀐 뒤 농협 개혁이 국정 이슈로 부상하면서 가까스로 통과됐는데요. 농협중앙회장 직선제 도입 등을 담은 농협법 개혁안이 비슷한 구조로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입니다.
농해수위 전체회의는 지방선거 이후 열리는 만큼 사실상 이번 회기 내 법안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하반기에는 상임위원장과 농해수위 위원 구성이 바뀌는 만큼 농협 개혁 법안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국회 관계자는 "하반기에는 상임위 구성이 바뀌는데 상임위원장을 누가 맡을지 등 여러 변수가 있다"면서 "농협 개혁 관련 법안이 1, 2차에 나눠 처리할 만큼 방대한데 제대로 추진될지 의문"이라고 전했습니다.
농협중앙회장 직선제 도입 등을 담은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농협법 개정안)이 결국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어기구 국회 농해수위 위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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