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은행 등 금융사를 향해 연일 강도 높은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이자장사', '준공공기관', '잔인한 금융 계급제' 같은 표현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직접 나서 금융권을 압박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지난 윤석열정부에서도 대통령이 '은행은 공공재'라고 표현하며 도 넘은 성과급과 이자장사를 비난했고, 금융당국의 서슬퍼런 검사권도 곧바로 가동이 됐다.
은행은 인허가 산업이고 예금자 보호라는 공적 안전망 위에서 영업한다. 금융이 실물경제와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서 사회적 책임 역시 피할 수 없는 의무다. 하지만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과 시장 원리를 부정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최근 금융업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보면 은행을 사실상 정책 집행기관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다. 금융사의 수익 구조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고신용자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적용하는 금융 원리를 '악마화'하고 있다.
금융은 본질적으로 '신용의 가격'을 매기는 산업이다. 신용도가 높은 차주에게 낮은 금리를 적용하고, 상환 가능성이 낮은 차주에게 높은 금리를 부과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체 가능성을 계산하고, 그 위험을 금리에 반영해 수익과 건전성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산업이다.
고신용자에게 이자를 더 받아 저신용자에게 싸게 빌려주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접근은 정치적 언어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예대금리차 확대의 구조적 원인은 외면한 채 결과만 비난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준금리가 내려가도 대출금리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은행이 남겨 먹기 때문만이 아니다. 대출금리에는 대손충당금 부담과 자본 규제, 유동성 규제, 예금보험료, 각종 사회공헌 비용 등이 동시에 반영된다. 정부 정책이 금리 왜곡을 키우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대출 총량 규제가 대표적이다.
특정 시기에 대출 공급을 강하게 조이면 은행은 한정된 총량 안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수익성이 높은 차주를 우선 선택하게 된다. 정부는 포용금융을 강조하지만 실제 규제 체계는 중·저신용자의 금융 접근성을 악화시키는 역설적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금융사들을 '악마화'할 수록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정치적 명분이 생긴다. 시장은 정부가 언제든 가격 결정 구조에 개입할 수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고, 이는 금융산업 전반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은행 등 금융사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치, 소상공인 금융지원, 중저신용자 대상 정책금융 협조, 각종 상생금융 프로그램 등은 사실상 준정책금융 수준이었다. 금융지주들이 수십조 원 규모의 생산적금융·포용금융 공급 계획을 내놓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금융사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며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왜 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리는지, 왜 혁신기업으로 돈이 흐르지 않는지, 왜 중저신용자들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는지 구조적 원인을 점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법 역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시장 메커니즘 안에서 찾아야 한다.
'금융은 경제 혈맥'이라는 말이 있다. 시장 원리를 무시한 채 정치적 필요에 따라 금융을 움직이면 혈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금융이 흔들리면 기업 투자와 자금 중개 기능이 약해지고, 결국 실물경제 전체에 부담으로 돌아온다.
정부가 진정으로 생산적금융·포용금융을 원한다면 은행의 팔을 비트는 방식이 아니라 리스크를 줄이고 시장 유인을 바꾸는 정책부터 고민해야 한다. 금융을 정치의 언어로 재단하는 순간, 결국 가장 큰 비용은 국민 경제 전체가 치르게 된다는 점을 상기하길 바란다.
이종용 금융부 선임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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