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모범택시
’를 보면서
‘현실에도 저런 모범택시가 있다면 그때 난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란 생각을 해봤다
. ‘모범택시
’는 두 가지 정의를 말한다
. ‘사적 정의
’와
‘공적 정의
’. 법은 언제나 공정한 것 같지만 공정함이 곧 정의를 뜻하는 건 아니다
. 그래서 모범택시 기사
‘김도기
’(이제훈
)는 피해자편에서
‘사적 정의
’를 행한다
. 통쾌하다
. 사람 때문에 힘들고 그로 인해 살의를 가질 정도로 힘든 시기를 겪어봤다면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
타인에 대한 살의를 느낄 정도로 힘들었던 경험은 살면서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군복무 시절. 극심한 괴롭힘에 군 생활 내내 몸서리치다 꿈에서까지 선임 이름을 말하며 욕을 한 모양이었다. 다음날 더 큰 얼차려를 가장한 괴롭힘을 당했다.
그래도 참을만했다. 나 혼자만 힘들면 되는 문제였으니. 가족 모두가 힘들어진 두 번째 경험을 제공한 ‘그’에겐 진심으로 복수를 하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악의적으로 체불된 임금 문제였다. 외벌이 가장의 임금을 악의적으로 체불하고 본인 실속만 챙겼던 그였지만 법은 가해자인 그의 편을 들어줬다. 괴상망측했고 요상했다. “도대체 내가 왜 저 사람과 합의를 해야 합니까?”란 질문에 “그게 선생님한테도 편하다”며 시큰둥하게 대답한 감독관의 얼굴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때 처음으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더니’란 생각을 했다. 밀린 월급을 받으러 가족이 다 함께 그 회사에 찾아간 적도 있다. 당시 어렸던 딸은 그때 기억이 충격이었던지 지금도 학용품을 사면서까지 돈 걱정을 한다. ‘꿈이 뭐냐’는 물음에 딸은 ‘월급 안 밀리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말한다. 부모로서 지금도 자식에게 저런 꿈을 갖게 해 준 게 가장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이다.
감독관의 강제 조정으로 개인 부채는 급증했고, 지금도 그 부채가 날 옥죄는 올가미로 남아 있다. 그래서 그럴지 모른다. ‘모범택시’를 보면서 사이다 한 잔을 벌컥 마신 것처럼 통쾌한 맛을 느낀다. 그때의 나 역시 ‘사적인 복수’를 꿈꾸며 여러 날을 살았으니.
“모래알이든 바윗덩이든 물에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다”는 말이 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처음 본 이 말은 ‘모범택시’에서도 인용됐다. 지금 세상이 얼마나 올바르고 공정한 사회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적 정의’와 ‘복수’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에 많은 사람이 환호하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사회적 안전망에 ‘빨간 불’이 켜진 게 아닌가 싶다. ‘공적 정의’와 ‘법’을 대신해 누군가 대신 울분을 터트려 주고 해결해 주길 바라는 판타지 법칙이 현실에 스며들고 있단 뜻이다.
얼마 전 악의적으로 임금을 체불했던 그 사람의 SNS를 우연히 들어가게 됐다. 잘 살고 있었다. 너무 잘 살고 있어 화가 났다. 그래서 복수를 결심했다. 복수의 방법은 ‘모범택시’가 아닌 작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를 따르기로 했다. 복수하고 싶은 대상보다 더 크게 웃으며 재미있게 인생을 사는 것. 복수의 대상에게 최고의 복수가 될 그 방법을 따를 것이다. 오늘부터 난 그 사람보다 더 많이 웃고 더 행복하게 살 것이다. 내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사적 정의’로 그를 응징할 것이다. 이제 나는 복수를 시작한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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