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서울시가 주요 축제마다 ‘약자와의 동행’ 가치를 강조하며 이해와 공감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자립준비 청년, 장애인, 노인, 임산부, 외국인 등 다양한 사회구조 속 약자들과 함께하는 축제를 통해 ‘약자와의 동행’ 가치가 시민의 삶 속에 녹아드는 기회를 만들겠다는 건데요. 내용을 살펴보니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타자화’할 우려가 있어 보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나와는 다른 존재로 더욱 부각시킬 기회가 될 만한 인식의 가능성입니다.
6개 축제 부대행사로 진행
서울시는 5일 정원박람회를 시작으로 서울시 주요 축제와 연계한 ‘약자동행 가치 확산 행사’를 개최합니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잠수교 뚜벅뚜벅축제, 서울조각페스티벌, 서울야외도서관, 문화가 흐르는 서울광장, 서울미식주간 등 6개 주요 축제의 부대행사로 진행되는 ‘약자동행 가치 확산 행사’에선 청년자립 응원 토크콘서트, 교통·보행 약자 체험, 장애 이해 체험, 다문화가정 한식 체험 등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선 자립준비 약자에 대한 이해를, 잠수교 뚜벅뚜벅축제에선 ‘교통과 보행 약자’ 체험을 하겠다는 행사입니다.
정상훈 서울시 기획조정실장은 “시민들이 약자를 공감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며 “이 행사를 계기로 약자동행이 시민 일상에 녹아들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인권 논란 있는 체험 위주 행사
서울시는 이번 행사를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끌어내겠다는 취지이지만, 정작 내용을 살펴보면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낙인과 타자화의 우려가 커 논란이 예상됩니다. 공감을 기반으로 한다지만 특정 대상을 분리된 존재로 부각시킬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일례로 잠수교 뚜벅뚜벅축제에선 교통·보행 약자의 불편함을 시민이 직접 공감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체험, 어르신 체험복 입고 걸어보는 체험 등을 마련했는데요. 장애 체험의 경우 ‘장애’의 불편함을 강조해 부정적 장애 인식을 확산한다는 점 때문에 장애 단체에서조차 지양하는 추세입니다. 장애 혐오와 노인 혐오 등 혐오 문화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한 상황 속에서 ‘장애’와 ‘노화’의 불편함 등 부정적인 면을 강조해 오히려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대상화, 그들을 나와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타자화를 서울시가 앞장서 강화한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 장애 단체가 이런 우려 때문에 장애 체험에 대한 행사를 축소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우려는 관람형 체험을 통한 정책 효과를 장기적으로 견인하기 어렵고, 사회구조적 문제 해결과의 연결이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024년 6월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빈곤사회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 등이 "서울시의 약자동행 정책은 생색내기용 정책"이라며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가진 바 있다. (사진=뉴시스)
스탬프 찍으면 자립준비 청년 이해?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서 운영되는 자립준비 약자 인식 개선 홍보 부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립준비 약자인 가족돌봄 청년, 경계선 지능인, 중도입국 청소년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서울시는 약자동행 스탬프 랠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계획인데요. 퀴즈와 게임 등의 부스와 스탬프 랠리, 유명 밴드 콘서트로 이뤄진 구성이 자립준비 약자를 위해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자립준비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립준비 청년 중 절반 이상이 ‘주거 불안’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에 대한 정책 마련보다는 일회성 이벤트로 ‘사회적 약자’를 소비하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실제로 장애 청년의 자립을 위한 서울시 지원주택 정책이 마련돼 있지만 서울시는 2년 전 중증장애가 있어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청년의 지원주택 입소를 금지하는 공고를 올려 장애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바 있습니다. 정책적으론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청년의 자립을 막으면서 겉으로는 이들을 위한 축제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서울시의 약자동행 정책 마련. 정책 홍보를 위한 여론 조성과 안내보다는 관람형 요소로 기획된 이벤트성 축제에 ‘사회적 약자’마저도 전시물로 전락한 듯한 모습입니다.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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