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안 전선에 '이복현' 부상
금감원, 20일 한경연에 토론회 개최 제안 공문 발송
한경연 "재의요구권 요청한 상태로 추가적 토론회 불필요"
이 원장, 상법개정안 '오락가락'하다 입장 선회
정무위 "과도하다"는 지적도…"야당도 달갑지 않아"
2025-03-20 16:07:49 2025-03-20 18:41:34
[뉴스토마토 이보라 기자] 상법 개정안 전선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뛰어들었습니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상법 개정안을 '정쟁'의 관점이 아닌 '정책 및 담론'의 영역으로 봐야 한다고 발언한 데 이어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경제계를 향해 공개 토론까지 제안했습니다. 임기 만료를 3개월 앞둔 상황에서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불렸던 그의 연이은 강경 행보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한국경제인연합회(한경연)은 금감원의 토론회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20일 금융감독원은 한경연에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공개 토론회를 개최하자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습니다. 전날 이 원장이 "저는 자본시장 선진화와 관련해 모든 것을 걸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서는 상황인데, 다른 말씀하시는 분들은 무엇을 걸 것인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며 "언제든 한경연 등과 공개적인 열린 토론을 하겠다"고 말한 데 따른 후속 조치입니다.
 
이같은 제안에 한경연은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경연 관계자는 "법안 논의 과정에서 수많은 세미나와 토론회를 진행한 바 있다"면서 "현재는 거부권을 요청한 상태로, 아직 공문에 회신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상태에서 법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는 불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재계는 상법 개정안에 재의 요구권 행사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 8개 기업단체는 지난 19일 상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거부권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상법 개정안이 회사법의 근간을 훼손해 법리적 문제가 크고, 주요국도 이사 충실의무를 회사로 한정하고 있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원장과 금감원은 상법 개정안이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규제는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에 따르면 미국의 델라웨어주 회사법에서는 이사의 충실 의무 및 그 위반에 따른 법적 책임의 대상에 회사와 더불어 주주가 병기돼 있습니다. 영국 판례에서는 이사가 회사법상의 권한을 행사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특별한 거래 상황에서는 주주에 대한 의무가 인정된다고 금감원은 설명합니다. 
 
이 원장은 상법 개정안을 두고 여러 번 입장을 번복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우리 법원이 법을 좁게 해석하고 있다며 상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뜻을 표했습니다. 이사가 '회사'에 충실해야 하는 기존 법 때문에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행하는 합병이나 유상증자 등의 사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배임죄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말부터 정부와 여당이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가닥을 잡자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주주 보호 원칙을 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입장을 바꿨습니다. 
 
올해는 또 달라졌습니다.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던 지난 13일 "국민의힘이 요구한 재의요구권 행사는 직을 걸고서라도 반대할 수밖에 없다"면서 사실상 상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 원장은 재의요구권 행사는 위헌적 요소가 크거나 명확히 헌법적 가치와 반하는 데 행사하는 것인데, 상법 개정안은 이 같은 성격의 사안과 다르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행보에 각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룹니다. 국민의힘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장은 지난 18일 열린 정무위에서 그의 '직을 걸겠다'는 발언이 과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윤 위원장은 "금감원장이 (상법)업무를 직접 핸들링하는 라인이 아니다"라며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고 꼬집었습니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야당으로서도 저런 행동은 딱히 환영할 수 없다"면서 "윤석열정권 막바지인데 (이런 행보가) 달갑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상법 개정안 이슈를 정쟁으로 보지 말자고 해놓고 이런 행보를 보이는 것이 오히려 정쟁을 부추기는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정계 입문설도 흘러나옵니다.
 
그의 종잡을 수 없는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이 원장은 가계부채와 관련한 발언으로 시장에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결국 가계대출 억제 정책과 관련한 오락가락한 발언에 대해 "급증하는 가계대출 관리와 관련해 좀 더 세밀하게 입장을 내지 못했다"며 사과했습니다. 지난해 국감에서도 이에 대해 지적 받았습니다. 당시 "정치할 생각이 있느냐"는 한 의원의 질문에 "없다. 총선도 있고, 재보선도 있었는데 안 나갔으니 이제 좀 믿어달라. 과거 발언이 좀 도를 넘은 부분이 있다면 자중하고 금융위원장을 잘 모시고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우리금융 경영평가등급과 홈플러스 사태, 상법 개정안 등 주요 현안에 대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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