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조기 대선'을 향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친기업 행보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정작 재계가 원하는 '선물 보따리'는 모습을 감췄습니다. 이 대표가 '국가 차원의 투자'와 '청년 일자리' 등의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정작 재계가 필요로 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상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반도체특별법'(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은 논의의 대상조차되지 못했습니다. 민주당은 재계의 요구와 달리 상법 개정안과 반도체 특별법을 기존 안대로 끌고 간다는 계획입니다.
박일준(오른쪽 세 번째부터)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과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을 비롯한 경제8단체 대표자들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권 행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상법도 반도체특별법도, 재계 요구 '묵살'
이 대표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일 서울 역삼동에서 열린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싸피) 현장 간담회 직후 약 10분가량 비공개 회동을 가졌습니다.
회동 직후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상법 개정안이나 반도체특별법 관련 논의는 오가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야권 유력 대선 주자와 재계 서열 1위 삼성 그룹 총수의 만남인 만큼 재계 현안 해소가 기대됐지만 구체적 성과는 없었습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5일 류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회장을 만난 바 있는데요. 당시에도 "앞으로 국부펀드든 국민펀드든 아니면 국가의 지원을 넘어서서 국가적인 차원의 투자하고 (기업과) 함께할 수 있는 그 길을 열어야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류 회장이 "AI(인공지능)와 반도체 혁명 등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했지만 반도체특별법이 논의 테이블에 오르진 못했습니다.
경제계는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 예외를 포함한 반도체 특별법 시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미·중 무역전쟁 등 글로벌 패권 경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재정 투입뿐 아니라 주 52시간 근로제한 규정 폐지가 절실하다는 입장입니다.
전날 진행된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제품 경쟁력 확보와 개발 난이도를 고려하면 주 52시간 폐지를 골자로 한 '집중 근무'가 필수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 대표도 반도체 특별법 관련 토론회에서 "예외 규정 적용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사실상 철회한 상태입니다. 결국 민주당은 주 52시간 근무 예외 적용이 근로기준법 체계를 무력화하고, 특정 산업에만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재정 투입 위주의 반도체 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조 수석대변인은 "반도체특별법은 고시 개정을 통해 하겠다고 정부도 방침을 정해 어느 정도 정리된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습니다. 정부는 '주 64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를 현행 3개월에서 6개월 단위로 늘려 활용할 수 있도록 새 지침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도 재계가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힙니다.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여기에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도 담겼습니다.
하지만 국내 경제 8단체(△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재계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면 주주들이 이사들에게 손해배상과 배임죄의 형사고발 등 소송을 남발해 기업 경영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주주의 이익만을 우선시해 헌법 제119조가 보장하는 '다양한 경제주체 간의 조화' 원칙을 침해하는 위헌 소지도 있다고 강조합니다.
또 재계는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에 있어서는 '제도화 준비 미흡', 감사위원 분리 선출에 있어서는 투기 자본의 '지분 쪼개기' 등의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삼성물산 불법합병 기억해야"
이 대표가 이 회장을 만난 직후 민주당은 최 대행에게 상법 개정안의 즉시 공포를 촉구했습니다. 당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는 "소액주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상법 개정은 2024년 1월 17일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정부의 과제로 설정됐다"며 "그런데 국민의힘은 같은 내용을, 민주당이 호응하고 추진하니 반대하고 나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TF는 상법 개정안 공포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삼성물산 불법합병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이들은 "삼성의 경우 2015년 구 삼성물산 불법합병으로 논란이 됐다"며 "국민연금이 약 2500억원의 손실을 입었고 우리 정부가 약 2300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편법 승계를 위해 구 삼성물산 주주를 포함한 전 국민에게 피해를 안긴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이번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가 이뤄진다면 '대한민국에 투자하면 주주로서 보호받지 못한다'고 전 세계에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