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비상에 빠졌습니다. 영남서 동시다발로 일어난 산불 탓입니다. 특히 안동·의성 지역 화재는 정부수립 이래 가장 큰 산불로 기록될 만큼 인명·재산 피해를 키우고 있습니다. 저도 산불 소식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본가가 안동·의성과 멀지 않아서입니다. 밤 사이 부친은 턱밑까지 온 산불 사진을 보냈습니다. 공제선을 붉게 칠한 산불은 빠르게 전진해 진을 친 적군과 마주친 듯한 공포를 줬습니다.
어느새 봄철 산불은 연례행사가 됐습니다. 2022년 163.01㎢를 태운 울진·삼척 산불 역시 봄(3월)에 일어났습니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산불이 가장 많이 일어난 계절은 봄입니다. 1년 중 발생한 산불의 55.5%가 3~5월에 집중됐습니다. 정작 낙엽이 많이 생기는 가을철 산불은 전체의 8.5%에 그쳤습니다. 일각에선 3~5월에 산불이 극심한 이유를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오르고 습도가 줄어드니까 토양의 수분과 나무의 물기가 말라버렸고, 불이 더 잘 붙고 쉽게 퍼지는 환경이 됐다는 겁니다.
다른 전문가들은 소나무 위주의 조림정책을 원인으로 꼽습니다. 6·25 전쟁 후 정부는 폭격과 화전, 벌목 등으로 황폐해진 산림을 복원하기 위해 조림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했습니다. 이때 빠르게 자라고 척박한 곳에서도 잘 견디는 소나무 위주로 숲을 조성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소나무가 송진 등 유지성분을 품고 있어 화재에 약한 데다 사계절 내내 달고 있는 솔잎은 불씨를 퍼트리는 역할을 한다는 지적입니다.
봄철 편서풍도 문제로 지목됩니다. 한반도의 남쪽엔 고기압, 북쪽엔 저기압이 머무는데 그 가운데 생성되는 게 바로 편서풍입니다. 편서풍은 대기의 층과 백두대간 사이의 좁은 통로를 지나면서 고온건조해지고, 바람이 강해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산불이 편서풍을 타면 옆으로 누운 듯한 형상으로 번지면서 삽시간에 불길을 키운다고 겁니다. 특히 편서풍은 소방 헬기 등 산불 진화 장비를 활용하는 것도 어렵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봄철 산불의 원인을 적고 보니, 지구에서 기후변화를 겪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한반도에서 편서풍대가 아닌 곳이 있을까요. 국토의 70%가 산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 대부분이 소나무숲입니다. 결국 국토의 70%는 늘 산불의 위험에 시달리고 있는 겁니다. 언제까지 봄만 되면 마치 '당첨, 산불'이라는 룰렛을 돌리듯 화재 위험에 시달려야 할까요. 산불 원인을 기후변화나 소나무숲이나 편서풍에서만 찾는 건 현명하지 못해 보입니다. 그건 정부가 "자연의 힘 앞에서 우리도 별수 없어"라고 말하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정부는 더 효율적이고 고도화된 산불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원인별 산불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소화시설 등 예방 인프라도 필요합니다. 첨단 과학기반 산불 감시 체계도 구축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산불이 났을 땐 조기에 신속하게 진압할 수 있는 태세를 확립해야 합니다. 산불 예방 홍보도 강화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에 대응한 탄소중립 정책도 추진해야 합니다. 활엽수와 침엽수가 섞인 혼합림도 조성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본가가 있는 곳도 소나무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소나무가 울창한 덕에 자연스레 송이버섯이 특산품이 됐습니다. 가을이면 향긋한 솔내음을 내는 송이버섯을 한가득 따놓고 먹는 게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그런데 화마가 한번 할퀴고 가면 소나무들이 많이 죽습니다. 송이버섯이 수확되지 않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산불 걱정 없이 오래오래 솔내음을 맡으며 송이버섯을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영남을 휩쓰는 산불이 하루빨리 꺼졌으면 좋겠습니다. 산불 진압을 위해 고생하시는 모든 분들이 무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최병호 공동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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