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12·3 계엄 사태를 시작으로 정치권에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그 행위들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도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 세력의 지지자들도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존중돼야 할 사법부의 판단까지도 본인이 지지하는 세력에 우호적이지 않으면 서슴없이 협박과 공격을 감행하는 문화까지 번지고 있어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및 관계자들이 윤석열 탄핵 관련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씨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가 늦어지는 가운데 탄핵이 인용되면 흉기 난동을 벌이겠다는 예고 글이 올라왔습니다. 글쓴이에 대해 경찰은 공중협박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글쓴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간첩놈들 없애버려야지”, “기다려라. 낫 들고 간다. 낫으로 베어버리겠다”, “탄핵 찬성 집회에 휘발유를 뿌리겠다” 등의 협박성 글을 게시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공중협박죄는 지난 2월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3월18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상동기 범죄와 인터넷 방송 및 게시판 등을 통한 흉기 난동 및 살해 예고 행위에 대해 기존에 시행되던 법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어 신설된 범죄입니다.
공중협박죄는 기존 협박죄와는 다르게 공안을 해하는 죄로서 공공의 법질서 또는 공공의 안전과 평온을 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범죄입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불특정 또는 다수의 사람의 생명, 신체에 위해를 가할 것을 내용으로 공연히 공중을 협박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상습범은 7년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중협박 행위를 기존 협박죄로 기소한 사건 중 A역에서 칼부림을 예고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게시 글을 열람한 피해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없다는 취지로 무죄, 불특정 다수의 게시글 열람자에 대한 협박죄 및 A역 이용자에 대한 협박미수죄는 피해자들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지는 등 처벌의 공백이 발생한 겁니다.
앞서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에서 유일하게 인용 의견을 낸 정계선 헌법재판관에 대한 욕설과 협박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정 재판관에 대한 인신공격과 음모론이 퍼지고 있습니다. 지난 24일 오후에는 서울 소재 정 재판관의 주소를 알아낸 윤석열씨 지지자 수십명이 정 재판관의 집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재판관의 집 앞에서 재판관에게 특정 결론을 종용하는 집회는 중대한 사법권 침해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집회 중 표현에 따라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도 성립될 수 있습니다.
온라인상의 위협성 게시 글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 재판관뿐만 아니라 다른 헌법재판관들에 대한 외모 비하, 성희롱성 발언, 신상 털기 등의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위협성 게시물은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협박죄에서의 협박은 객관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이 현실로 공포심을 일으킬 것까지 요구되는 것은 아니므로 여러 사정을 종합해 상대방이 공포심을 느끼게 할 정도면 협박죄가 성립하는 겁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고, 거짓의 사실을 드러냈다면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헌법재판관에 대한 비방 글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나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지난 26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또 한차례 사법기관에 대한 유사 범죄행위가 벌어질 우려가 높습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윤씨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일에 벌어질지 모르는 대규모 폭력 사태에 대비해 경찰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은 보호되는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익명 또는 가명으로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를 표명하고 전파할 익명 표현의 자유도 그 보호 영역에 포함됩니다. 하지만 어떠한 기본권이라도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고 범죄에 해당하는 표현은 분명히 규제 대상이 되고 혼란을 증폭시키는 만큼 엄벌할 필요가 있습니다. 극단주의를 표방하는 일부 사람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나 사법기관의 독립성 등이 위축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상이 극단주의로 치닫고 폭력성을 갖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다른 의견을 잘 듣고 수용하는 방법을 교육할 필요도 있습니다. 다양한 목소리는 민주주의 사회의 존립과 발전의 근간이라는 점을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