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미국발 관세 전쟁 폭풍에 증시가 실시간으로 휘둘리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에 따라 주가 급등락은 예사일뿐더러 기업들의 미래 전략도 달라질 판입니다. 그 사이 코스피는 2300대 중반으로 주저앉았습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의 발언과 관련한 속보가 나오면서 상호관세 부과가 시행 직전에 극적으로 연기될 것처럼 보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그것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부정, 가짜뉴스로 일단락됐습니다.
그럼에도 주식시장에선 2년 내 최저가 수준으로 하락한 지금이 공포를 매수할 때라며 ‘야수의 심장’을 강조하는 투자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방어에 치중하는 투자자들이 더 많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의 변동성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투자자들의 선택에 따라 갈리겠지만, 각각의 선택지는 명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젠 충분히 싸다
공포를 사겠다는 투자자들이 자신감을 보이는 뒷배는 싼 가격입니다. 전 세계 증시가 동반 급락했으나 유독 한국이 싸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코스피는 지난달 27일부터 낙폭을 키워 7일엔 2327포인트까지 하락했습니다. 지난 12월 비상계엄 선포 후 찍었던 저점보다 더 내려왔습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하락할 경우 2023년 10월의 저점인 2277포인트, 그해 1월3일 기록한 저점 2218포인트에 다가서게 됩니다.
지금의 주가지수를 이익과 자산 대비 주가 수준으로 보여주는 한국거래소의 밸류에이션 지표로 확인하면, 코스피 전체 주가수익비율(PER)은 12.20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81배입니다. PER의 경우 아주 낮다고 할 순 없지만 PBR은 지난 10년 중 최저 수준입니다.
물론 이 PER과 PBR은 지난해 기업들이 올린 실적에 현재 주가를 대입해 산출한 수치이므로, 올해 기업들의 실적이 감소하면 그에 맞춰 조정될 겁니다. 만약 올해 코스피 상장기업들이 올린 연간 이익이 작년의 반토막 수준에 그친다면 코스피 2327포인트 기준 PER은 24배로 뛰어 지금의 낮은 지수도 비싼 가격이 됩니다.
물론 과거 실적에 기준한 밸류에이션의 착시는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트럼프의 관세 정책 등으로 수출기업들이 우려하는 상황이어서 어느 정도 눈높이를 낮출 필요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업 실적 반토막은 예시에 불과할 뿐으로 실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최근 증권사들도 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반영해 속속 전망치를 수정하는 중인데요. 이를 참고하면, 12개월 예상 실적을 반영한 코스피 PER의 최저점은 대략 9배, 낮게 잡은 곳은 8배 초반입니다. 올해 기업들의 실적을 보수적으로 잡는다고 해도 지금 코스피는 9.5배 미만, 즉 충분한 저가 영역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낙폭 큰 주식이 반등도 크다
관세 폭풍이 휘몰아친 지난주부터 이번 주초까지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에서 엔비디아와 테슬라를 대거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테슬라 주가를 2배로 추종하는 종목과 나스닥지수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도 매수 목록에 올라 한국 투자자들의 공격적인 성향을 보여줬는데요. 이는 저평가된 주식을 싸게 매수한다기보다, 주가 낙폭이 큰 인기 종목의 단기 반등을 노린 투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지켜보는 투자자들 중에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테슬라가 200달러 깨지면 들어간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도 이같은 투자 패턴이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2일부터 7일까지 코스피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매수한 종목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입니다. 대표 수출업종인 반도체의 두 기둥을 각각 1조2394억원, 1조2217억원씩 순매수했습니다. 현대차도 자동차 관세로 우려를 안고 있어 시장이 급락을 멈춘 8일에도 남보다 먼저 하락 전환했습니다. 그러나 개인들은 8영업일 연속으로 순매수했습니다. 2일 이후에도 2305억원어치 사들였습니다.
LG전자(1282억원)와 LG화학(711억원)의 경우에도 트럼프의 고율 관세 충격이 컸던 베트남에 생산공장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낙폭이 컸기에, 시장이 반등할 경우 일정 부분 되돌림이 기대되는 종목들입니다.
이처럼 공포를 잡으려는 개인들은 대표적인 수출기업이라서 타격이 컸던 종목들에게서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도망가기엔 늦어…방어주 구축
트럼프의 관세 카드를 우려했던 보수적 투자자들은 이미 주식 비중을 줄이고 현금 비중을 높인 상태입니다. 이들은 마음 편히 재진입 시기를 재고 있습니다. 주식을 매도하는 대신 업종과 섹터의 비중을 전환해 방어 체제를 구축한 투자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수출기업을 매수하기는 이르다는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증권사의 시각도 비슷합니다. 신한투자증권은 이날 2분기 주식시장 수정 전망을 내놓으면서 2분기 증시는 관세와 미국 매출 비중 업종에 따라 엇갈릴 전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매출 비중이 큰 반면 미국 내 생산 비중이 작은 기업들을 경계했습니다. 의류와 의약품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각각 39.5%, 63.4%씩 미국 매출 비중을 갖고 있지만 현지 공장 밸류체인 비중이 낮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도체, 일부 의약품, 자동차는 위험 노출 업종으로 설명했습니다.
반면 미국 내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으면서 밸류체인을 확보하고 있는 일부 음식료 기업, 전력기계, 화장품, 2차전지의 경우 지금은 변동성에 노출돼 있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CHIPS Act)에 대한 방향 결정 후 재평가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수출기업이지만 사정이 다르다는 이유로 조선과 방산 업종을 대피소로 여기는 투자자들도 있습니다. 이들도 관세 폭풍을 비껴간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남들보다는 강한 방어력을 보여줬습니다.
통신과 교육 등 내수주들도 전통적인 방어주답게 시장의 하락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엔터테인먼트의 경우도 해외 공연에서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관세 리스크에선 비켜서 있어 폭락 기간 약세 정도로 선방했습니다. 다만 이들은 시장이 반등하는 경우에도 이에 올라탈 수 없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한편, 과거 또 다른 방어주로 여겨지던 금융주들이 이번엔 동반 하락했는데요. 여기엔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와, 야당의 집권 가능성이 커진 데 따른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금융횡재세 등 은행권을 압박하는 정책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서민과 중소기업 지원에 관한 지원 요구도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진=뉴시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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