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문명과 라오인 이야기)⑥따이인의 국가: 므앙
따이인 도시, 땅 넓히지 않고 물길 따라 지형 선택 탄생
소국과민, '므앙'이 보여준 ‘비중앙집권’ 지혜와 생명력
2025-04-14 06:00:00 2025-04-14 06:00:00
동남아시아인도차이나 반도일반적으로 태국과 베트남을 떠올리게 합니다온화한 기후 탓에 전 세계 최고의 휴양 국가이자 관광 국가로 알려진 곳입니다하지만 이들과 맞닿아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 유일의 내륙 국가 라오스’. 낯선 만큼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그 속살을 살펴보면 의외로 우리와 많은 부분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곳이기도 합니다뉴스토마토 K-정책연구소의 글로벌 프로젝트 은사마가 주목하는 해외 거점 국가 라오스의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1. 라오스와 태국의 도시
 
라오스 수도 위양짠은 면적이 3920㎢로, 605㎢인 서울보다 약 6배 크다. 그러나 인구는 서울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수도에서 한 사람이 점유할 수 있는 평균 공간이 서울보다 60배 이상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라오스에서 인구가 많은 도시는 산이 적고 평야가 넓은 남부 지역, 예를 들어 싸완나켓과 빡쎄 정도. 하지만 이 두 도시도 인구가 15만명을 넘지 않는다. 라오 왕국의 오랜 수도였고,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루왕파방은 유명한 여행지이지만, 인구는 약 5만명 남짓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웃 나라 태국 사정은 어떨까. 태국의 인구는 약 6600만명으로 한국보다 많고, 수도 방콕 인구도 서울보다 약간 많다. 다만 많은 한국 방문자들이 방콕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내의 부산이나 대구 같은 지방 도시도 태국에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태국에는 인구 100만명을 넘는 도시가 단 한 곳도 없다. 50만명을 넘는 도시조차 드물다. 태국 제2의 도시 치앙마이는 면적이 40㎢ 정도이고, 주변 지역을 포함한 광역권까지 묶어야 인구가 약 120만명 수준이다.
 
2. 므앙
 
따이인이 있는 곳엔 ‘므앙’이 있다. ‘므앙’은 따이인에게 도시를 의미하지만, 본래는 ‘나라’를 뜻하는 말이었다. ‘므앙 라오’ ‘므앙 타이’라고 하면 라오스나 태국에서는 바로 뜻을 알아듣고, 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친근함을 전한다.
 
‘므앙’은 중국 광서좡족자치구에서도 지명으로 남아 있다. 따이인의 서진과 남진이 시작된 출발점이 바로 중국 남부 지역이었기 때문에, ‘므앙’은 본래부터 따이 문명과 역사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
 
현재 ‘므앙’은 라오스에선 군이나 구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명칭으로 사용되고, 태국에서는 도청 소재지가 있는 도시를 ‘암퍼 므앙’이라 부른다. 태국에는 방콕을 제외하고 76개의 도가 있으며, 이 중 6개를 제외하면 대부분 도에서 므앙의 이름이 곧 도의 이름과 같다. 이런 사실은 태국에 70개에 달하는 자치권을 가진 소국들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므앙’은 ‘므앙파이’라는 고대 따이어 계통 언어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파이’는 저수지를 의미하고, ‘므앙’은 수로를 뜻한다. 따이인은 논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민족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한 관개시설이 반드시 필요했다. 논 자체가 물을 가두는 구조라는 점에서 보면, 논은 일종의 작은 저수지라고도 할 수 있다.
 
싸이냐부리 코끼리 축제에 가는 사람들. 사진=우희철 작가
 
3. 므앙의 조건
 
따이인은 온난 습윤한 기후에 적응한 농민이었다. 자연 강우가 많았기 때문에, 경사가 적당하고 물이 잘 빠지는 곳이 농사짓기에 가장 적합했다. 저지대 평탄한 지역은 우기에 호수나 습지로 변해 개간에 불리했으며, 반면 강이 흐르고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 므앙을 세우기 좋은 조건이었다.
 
실제로 라오스 마을에 가보면 산을 등지고 물을 향한, 즉 배산임수 지형이 많다. 특히 라오스는 카르스트 지형이라 산이 비에 잘 녹아 기묘한 풍경이 형성된다. 방비엥처럼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지역도 이와 같은 지형을 갖고 있다.
 
따이인은 자연을 인공적으로 개조하기보다는 이미 좋은 지형을 찾아 이동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시 말해, 따이인의 확산은 도시의 팽창이 아니라, ‘므앙’이 될 만한 지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4. ‘소국과민’(小國寡民) 므앙과 만달라 체제
 
따이인은 중앙집권적 국가관을 갖지 않았다. 크고 작은 므앙들이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체제였다. 므앙 간 질서는 강력한 짜오나, 짜오파, 쿤이라 불리는 지도자 역량에 따라 좌우됐다.
 
큰 므앙의 지도자는 ‘왕’으로 번역될 수밖에 없지만, 중국의 황제나 조선의 군주처럼 중앙집권적 권위를 가진 존재는 아니었다. 작은 므앙에 지방관을 파견해 세금을 걷는 식의 행정은 존재하지 않았고, 일종의 조공 관계를 형성해 자율성을 유지했다. 여러 강한 므앙 사이에서 약한 므앙은 이중 삼중으로 조공 관계를 맺으며 자치권을 보전하려 했다. 이런 조공 관계는 따이족 내부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라오스 씨양쿠왕주에 위치한 므앙 푸안은 베트남 왕조 다이비엣과도 조공 관계를 맺었다.
 
중국 문명 영향을 받은 비엣인들은, 과거 중국의 중앙정권이 자신들에게 적용한 방식대로 므앙 푸안을 다이비엣의 현(縣)으로 편입하려 했다. 이에 맞서 라오족 란쌍 왕국이 므앙 푸안을 구원했다. 이후 란쌍이 루왕파방과 위양짠으로 분열되자, 므앙 푸안은 두 므앙 모두와 조공 관계를 맺었다. 이웃한 다이비엣은 물론, 오늘날 태국인 조상인 싸얌과도 조공 관계를 형성했다.
 
므앙 푸안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기에 들어서기 전까지 반독립 상태를 유지했다. 이런 내외적 만달라 체제는 태국과 미얀마 샨주 지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다만, 상대가 베트남이 아니라 중국의 대륙 정권인 원나라나 명나라였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오늘날도 라오인들은 군수나 구청장을 ‘짜오 므앙’, 마을 지도자를 ‘나이’라 부른다. ‘나이’는 과거 마을 단위를 지배하던 하급 귀족 통치자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이런 만달라 체제는 따이인의 중앙집권 국가 건설을 어렵게 만들었다. 태국에서 중앙집권화는 현재 10세까지 이어진 짜끄리 왕조 들어 가능해졌으며, 라오스에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기에야 실현됐다. 프랑스 식민 통치 아래에서 라오 왕국 왕자가 지방관을 처음으로 파견했고, 완전한 중앙집권제는 현재의 라오 인민혁명당 정권에 이르러서야 완성됐다.
 
라오스의 기우제인 분방파이. 로켓을 높이 쏘아 올리는 경쟁과 음란한 행위로 하늘을 노하게 해서 비를 오게 하는 행사. 사진=우희철 작가
 
5. 왜 태국이나 라오스는 한 달 살기나 장기 체류에 좋을까?
 
이 지역은 기후가 주는 이점이 크다. 실제로 여름보다 겨울의 사망률이 약 12% 이상 높다. 그 이유는 계절성 바이러스, 심혈관 질환, 그리고 햇빛 부족이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대체로 따이인이 사는 곳은 따뜻한 남쪽 지역으로, 겨울철에도 활동하기 좋다. 추운 날씨에 온몸을 동여매고 다닌다면 해방감을 느끼기 어렵다. 따이인들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절대적인 결핍으로 인한 불행감은 드물다.
 
월세와 생활 물가가 낮다는 점 외에도, 따이 사회는 ‘소국과민’ 장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구조다. 라오스에 정착한 교민들이 한국에 다녀온 뒤 ‘답답하다’고 느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므앙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마을 공동체가 살아 있다는 것이며, 그것이 곧 축제의 중심이 된다는 점이다. 따이인의 축제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해방과 발산의 시간이다. 짧은 여행밖에 허락되지 않더라도, 따이인 축제 시기에 맞춰 여행을 간다면 즐거움은 몇 배가 된다. 이번 주, 따이인의 신년 축제가 시작된다. 여행을 준비한다면 고려해볼 만하다. 
 
라오스=프리랜서 작가 제국몽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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