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1일 이후 사법부엔 '국민주권 찬탈자'라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데 따른 후폭풍입니다. 대법원이 유력 대선주자의 정치생명을 끊을 수 있는 판단을 이례적으로 빠르게, 또 석연찮은 시점에 했기 때문입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필두로 한 대법관들이 '정치개입'을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대법원이 이렇게 무리한 판결을 하게 된 배경에는 법관들의 '엘리트주의'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입니다. 소수의 엘리트로 구성된 사법부가 대중을 지배하는 일명 '사법 통치' 행위를 공공연한 행동으로 인식했고, 그런 판단에 어떠한 문제의식도 갖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입니다. 대법관 증원을 통해 '엘리트법관 주의'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사진=뉴시스)
법조계에선 '사법 쿠데타'라 불리는 최근 대법원 판결이 가능했던 이유는 소수의 법관들이 자신이 시민들보다 더 옳은 판단을 한다는 신념, 법관 엘리트주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사례는 오석준 대법관의 이른바 '이중 잣대' 논란입니다. 오석준 대법관은 2011년 12월 서울행정법원 판사로 재직할 당시 승객에게 받은 버스요금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버스기사를 해고한 사업주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오 대법관은 2013년 2월 유흥업소에서 접대를 받은 검사에 대해서는 면직 처분한 걸로 확인돼 논란이 됐습니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법원은 재판 진행 절차에서 시간을 조정하면서 법원이 재판을 주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많이 줬다"며 "(이번 일의) 본질적인 원인은 재판관의 숫자가 적어 자신들을 엘리트로 생각하고, 사법 통치자 역할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후보의 대법원 판결문에서 거론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란 표현은 이런 법관들의 인식을 보여준다는 평가입니다. 유죄 취지 파기환송에 찬성한 서경환·신숙희·박영재·이숙연·마용주 대법관은 보충의견으로 "우리 헌법과 법률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며 전례 없는 신속한 판결을 강조했습니다. 이들은 '특히 사회정치적으로 갈등이 심하고 분열을 조장하여 신속한 해결이 필요한 사건'의 재판 지연으로 사법불신을 받아온 점을 강조, 이 후보 사건의 판결의 정당성을 강변한 겁니다.
하지만 법원의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재판의 진행 과정, 선고일 등을 결정하는 권한을 쥔 재판부에 따라 '정의 지연'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지난 2019년 나 의원을 비롯해 자유한국당(지금의 국민의힘) 의원·보좌진 27명은 2019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법안과 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막는 과정에서 동료 의원을 감금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지만, 6년째 1심 결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지난 1월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국회 난동 사건 때문에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된 여권 인사들에 대한 1심 재판만 6년째 끌고 있다"며 "이들이 다른 사람의 재판 지연을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시민단체 촛불행동이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대법원 규탄, 대선개입 중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교롭게도 나 의원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판사 출신입니다. 나 의원의 부군도 서울대 법대 출신의 현직 판사입니다. 법관들의 엘리트주의 혁파를 사법개혁 당면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쏟아지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준일 교수는 "대법관은 소수이다 보니 굉장히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 재임 중에도 그렇지만 퇴임 후에도 대법관들은 소수이기에 전관예우를 받는다"며 "소수이기 때문에 희소성의 가치 때문인데, 가장 좋은 방법은 대법관 숫자를 늘리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장유식 변호사(법무법인 동서남북)는 "이번 일로 엘리트 법관들이 국민 주권에 반하는 재판을 해도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포퓰리즘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소수정예로 만들어지는 독점적 엘리트주의로 만들어지는 권위주의를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장 변호사는 "대법관 숫자를 늘리는 일을 충분히 검토를 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법관 증원을 위해서는 헌법 개정도 필요 없습니다. 법원조직법만 개정하면 됩니다. 법원조직법 제4조2항은 "대법관 수는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으로 한다"고 규정합니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8일 대법관 숫자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다만 단순히 대법관 증원만이 엘리트주의를 혁파할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는 "대법관 구성원 다양화돼야 한다"며 "구성원이 너무 일률적이다. 단순히 인원수를 늘리는 건 의미가 없다. 인원수 증가는 필연적으로 법관 다양화를 의미하고 둘은 완전히 세트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역대 대법관들은 서울대 출신의 50대 남성, 일명 '서오남'에 치중된다는 지적 계속됐지만 아직도 개선되지 못했습니다. 현재 14명의 대법관 중 여성은 3명입니다. 비서울대 출신도 2명뿐입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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